한때 우리는 이념이 무너지고 나면 문학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염려하고 고심했다.
그것은 이념이 문학의 지표가 되어서가 아니라 이념이 문학하는 행위를 오히려 안일하게 만든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문학, 창작에의 심원한 세계의 발견에 그것은 적극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깊고 부드러운 서정의 세계, 자유롭고 분방한 감정의 표출은 그리하여 이념의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문학의 근원적 욕구와 충동으로서 90년대 후반의 문학의 진면목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념보다 서정의 세계의 넉넉함을 시인과 독자들은 함께 누리고 있다.
그러한 서정의 세계 속에는 정(情)을 노래한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한국적 정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한(恨)의 세계를 노래한 시들도 많이 쓰여지고 있다. 문인수의 '정선 아리랑'(현대시학 2월호)과 송종규의 '메기와 쓰레기통'(현대시 2월호)이 그런 예이다.
강원도 정선 땅은 산이 많다/비알밭에 호미 걸고/막장에서 막장으로 산 넘어 봐라/한 세상 넘는 일이 숨이 차고 눈물 나지/그리하여 저 노래는 애가 터진다/소나무 등허리가 그렇게 다 굽었다
문인수 '정선 아리랑'
살아서 펄럭이는 나뭇잎 한 장도 그러나, 내 것은 아니었다/나는 살아서 따뜻한 것들의 무덤/죽어서 꿈꾸는 것들의 자궁, 환한 밤의 아포리아/누구든 와서/내 숟가락의 풍요와 내 입술의 향기를 잘라 가라
송종규 '메기와 쓰레기통'
'정선 아리랑'은 정선 지방의 민요 '아리랑'을 제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가락이 유장하면서도 한이 묻어 있다. 민요의 율조를 띠면서 시에 묻은 정서는 한의 오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러한 한과 멋의 세계는 문인수의 체질이 된 듯하지만, 한과 멋, 그것이 한국적 정서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진대 그 가락으로서의 노래는 잊혀져 가는 우리 정서의 원형의 재생에 값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지나친 회고조, 현실감이 없는 타령조, 트릭으로서의 동어반복 등은 시의 활력을 위해 재고해 봄직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메기와 쓰레기통'은 사물을 제재로 해서 쓰여진 현실시이지만, 이 시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화해롭지 않은 삶의 면모들이다.
'푹 삶긴 메기'와 '파김치가 된 당신'의 병치가 그런 것을 암시한다. 이 시에서의 삶은 결코 화해롭지 않다. 그것은 '죽어서 꿈 꾸는 것들'에게 '숟가락의 풍요와 입술의 향기를 잘라 가라'고 절규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그 절규는 사물의 방기가 아니라 버려진 사물에 대한 애정, 궁극적으로는 삶에의 적극적 끌어안기의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언제나 새롭고자 하는 노력은 송종규 시의 활력이지만 안정된 톤이 그의 시의 친화를 위해 기능한다는 사실 또한 함께 고려해 봄직하다.
이기철〈시인·영남대교수〉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