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들의 힘겨운 설

입력 1999-02-13 00:00:00

"부모님 산소 앞에 나서기가 송구스럽지만 그래도 마음은 설렘니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노숙자 김종철(가명·44)씨. 고민 끝에 부모님 산소와 고향 누님을 찾아 15일귀성길에 오를 결심을 했다. 2년만의 귀향. 그동안 공공근로사업에 참가해 받은 돈으로 작은 선물도 샀다. "못난 아들이지만 반갑게 맞아 주시겠지요?"

대구시내 각 노숙자쉼터에 머물고 있는 노숙자 250여명 가운데 그나마 김씨처럼 귀성결심을 한사람은 40명이 채 안된다. 찾아갈 고향이 없거나 차마 가족들 앞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귀성을 포기한 노숙자들에게도 올 설이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뜻하지 않게 큰 '명절 선물'을 받은 달서구 두류2동 '근로자의 집' 노숙자들은 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한 독지가가 경산시 자인면에 있는 임야 2천여평을 근로자의 집에 무상 기증키로 한것. 새 봄이 오면 이 땅에 밭을 일궈 복숭아나무를 심을 계획까지 마련해 둔 노숙자들은 설날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경산으로 땅 구경을 갈 계획이다.

북구 칠성동 '길찾는 사람들'의 노숙자들은 좀 특별한 설 쇠기를 할계획. 14일 신암양로원을 시작으로 16일 요셉의 집, 17일 국제재활원 등 바쁜 '위문 일정'을 마련한 것.

세배하러 올 자식이 없는 이들에게, 찾아갈 고향이 없는 이들이 '자식 노릇'을 자청한 셈이다.구민교회가 운영하는 중구 근로자의 집 노숙자들은 17일 오후 '선한 사마리아인의 집' 노숙자들과 수창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선 체육대회를 열기로 했다. 다른 노숙자들도 저마다 쉼터에 모여차례를 지낼 예정이다.

조촐하게나마 설 음식도 만들고 명절기분을 내보려고 하지만 쉼터에 머무는 노숙자들은 그래도허전한 기분을 감출수 없다.

"아버님, 어머님 이번 설에 찾아뵙지 못하는 저희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남편은 공공근로에 잘 다니고 있으며 저는 병원 간병일을 할 것 같습니다" 길찾는 사람들에 기거하는 노숙자 부부가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눈물로 쓴 편지다. 〈申靑植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