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명절 주부손에 달렸다

입력 1999-02-10 14:00:00

IMF로 나라·기업·살림에 거품이 빠지면서 긴장된 가운데 설날(2월16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좌절'과 '희망'이라는 일란성 쌍둥이를 잉태하고 있는 긴장속에 맞이하게 될 IMF 설날을 맞는표정도 갖가지이다.

설빔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처럼 맹목적으로 좋기만 하던 설 분위기가 사라지고, 돈·물질·자동차행렬이 연상되던 설풍속도가 위축되면서 그동안 잊고 살던 고향과 인간 관계를 되새겨보는 새로운 물결로 승화되고 있다.

하이텔 동호인 김영란(BYSKER·대구여성회 이사)씨는 '명절과 고향 & 여성'이라는 통신글에서우리네 가슴에 고향을 심어주는 일, 그 고향을 만들어주는 일은 어머니 그러니까 여성들의 몫이라고 말한다.

조상께 차례 지내느라 고단하신 몸을 쉴 틈이 없고, 자식들은 형편대로 따로따로 오니까 밥상도오는 대로 차려야하고, 기름진 명절 음식에 질릴까 싶어 입맛 돋우는 음식도 장만해야하는 어머니.

당신 몸은 부서질 듯 힘드셔도, 행여 소홀한 자식이 있을세라 일일이 마음 쓰시느라 여념이 없으신 어머니가 계시기에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고향을 찾는다는 김영란씨는 "그 고향을 만드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우리네 가슴에 고향을 심어주는 일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 있을까싶은 여성들의 몫"이라고 단언한다.

"살면서 가장 어려울 때 이겨낼 힘을 주는 것은 그 고향의 품에 대한 기억이며,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살림살이의 정수"라는 김씨는 부모님께서 전해주신 그 고향을 우리 자식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거부한다면 '살림의 문화'는 우리 대에서 맥이 끊어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에 사는 주부 김경숙(43)씨도 나의 근본을 있게한 조상의 의미를 되새기며평화롭게 설맞이를 하고 있다.

김씨는 IMF로 다소 어렵지만 제수장만이나 세뱃돈을 줄이지는 않는다. 서울에서 스무시간씩 걸려서 내려오는 동서를 빈손으로 되돌려 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음식을 다소 넉넉하게 장만하여 서울 올라가는 동서에게도 돌려주고, 가까운 친척들도 나눠 먹는다"는 김씨는 일년에 한두번 보는 조카나 수하에게 줄 세뱃돈을 줄이지 않는다.

"차례를 모실때 제수를 많이 장만하기 보다 형편에 맞게 줄이더라도 성내지 말고 정성을 다해야한다"는 시어머님의 가르침은 바로 물질보다 정신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냐는 김씨는 명절을즐겁게 맞느냐, 짜증스럽게 맞느냐는 다 주부들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맞벌이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혼자서 제수를 장만하기 어려운 집안에서는 전과 나물·어물을 뷔페식으로 나누어서 장만하는 신조류가 형성되기도 하며 청백다례원(원장 배근희)에는 같은 돈으로제사상의 격조를 높이기에 좋은 문어·오징어오리기를 배우러 오는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손위 동서댁으로 제사를 모시러가는 50대 주부 송월희(대구시 수성구)씨는 "제관들이 많이 오는만큼 갈라먹을 음식도 있어야한다"며 음식의 가지수를 줄이되 신선한 재료로 정갈하게 장만하며,연안진씨 종부인 손문숙(달서구청 민원실장)씨는 설날을 가족간 우애를 나누는 계기로 삼는다고말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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