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흐름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지, 이즈음 사극(史劇)의 단골 메뉴는 '왕위 찬탈전'이다.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갈등이 주제지만 왕위 찬탈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4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유례없는 인기를 누렸던 KBS 1TV의 '용의 눈물'이 그랬고, 그 후속으로 요즘 방영되고 있는 '왕과 비'도 마찬가지다.
■흥미 치중 역사왜곡 위험
이들 사극은 '팬터지 드라마'가 아닌데도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흐르고, 야사적(野史的) 접근에기울어져 있어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그때문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비판과 비난을 사기도 한다. 더구나 역사 해석에 익숙하지 않은시청자들에게는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인지, '드라마로 보는 역사'인지 혼란을 빚게 하고, 역사를 왜곡할 '독소적인 요소'마저 없지 않다.
'용의 눈물' 방영 때도 그랬지만 '왕과 비'가 방영되면서 인물 해석을 놓고 논란과 비판이 드세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묘사를 싸고 그를 지나치게 미화, 역사를 왜곡한다는 강도 높은 비판에 작가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 20여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이어서 법정시비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인다. 이런 상황이 불거지면서 사학자들과 시청자들의 비판의 소리도높아지고 있다.
조선조 초기의 단종과 세조 시대를 다루고 있는 이 정치 드라마는 왕권과 신권의 갈등에 궁중비사(宮中秘史)들이 곁들여진다. '용의 눈물'의 인기에 편승해서 출발, 그 음덕으로 20% 정도의 비교적 높은 시청률도 유지하고 있다.
'왕과 비'가 논란과 비판을 부르는 가장 큰 원인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과정에서 일어난 '계유정난'의 해석 문제에 있다.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기보다 왕권과 신권 사이에서 왕권을 지키려고 고뇌하는 왕족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양대군 지나친 미화
이 사극은 또 수양대군이 흔들리는 권력의 구심점을 이끌어냈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가 매몰차게 단종을 폐위시킨 '권력 지향형의 인물'인데도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간적인 면모가부각돼 '계유정난'을 옹호하는 듯한 인상마저 짙다. 그의 권력욕이 왕조의 정통성에 남긴 상처는무오사화(戊午士禍)의 원인도 되지 않았던가.
그뿐만이 아니다. 김종서와 황보인이 안평대군과 역모를 꾸몄다는 묘사도 무리다. '만고의 충신'으로 알려진 김종서가 왕권에 도전한 적이 없음에도 수양대군에게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억지역적'으로 그려 수양대군의 야욕에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되레 정변의 책임을 뒤집어씌운 격이다.제작진은 정사(正史)인 단종실록에 의거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편찬담당자들의 명단조차 붙이지않은 이 실록은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이례적으로 곡필(曲筆)이 많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굳이 집권자의 입장에서 쓴 이 실록에만 충실한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역사평론가 이덕일씨는 '수양대군.전두환 그 닮은꼴의 쿠데타'란 글로 비판을 가한데 이어 최근에는 '왕과 비, 걷어치워라'라는 글을 통해 더욱 강도 높게 이 드라마의 작가에게는 사관(史觀)과사료(史料)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작가 정하연씨는 '역사 드라마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비난은 이번 기회에 없어져야한다'고 맞서고 있지만, 드라마의 빗나간 역사관이 시청자에게 잘못된 역사의식을 심을 수 있다는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학자들도 '계유정난'과 수양대군의 집권은 명백한 '쿠데타'이며 '왕위 찬탈'이라고 보고 있다.
■성공한 쿠데타는 무죄?
사극에서도 작가의 창작의 자유는 인정돼야만 한다. 역사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공백은 작가가상상력으로 메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고증의 차원을 넘어선 사료 비판의 전문성이 요구된다.그렇지 않고 작가가 과욕을 부려 사실을 왜곡할 경우 사극을 빙자해 역사를 욕보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독소'를 끼얹게 되고 말 것이다.
더구나 그보다도 정당성과 정통성이 결여된 강력한 권력을 부추기는 '위험한 발상'과 '성공한 쿠데타를 무리하게 미화하는 드라마'가 방송의 전파를 탄다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