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프로젝트-성공의 조건

입력 1999-01-29 14:57:00

서대구 공단에 자리잡은 대경염직은 첨단 염색시설을 자랑한다. 웬만한 밀라노 지역 염색가공공장의 시설을 능가한다.

지난해 12월 대구시 밀라노방문단에 참가한 조양모방의 민웅기 사장이 "제냐와 함께 이탈리아 최대 모직업체인 로로 피아나의 염색시설보다 낫다"고 평가할 정도다.

이 공장은 이효균 직물조합 이사장을 비롯한 7명이 중소기업 진흥공단의 협업화사업 자금을 지원받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경염직은 초기투자비용으로 인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섬유업계는"동업형태로 운영돼 주인 없는 회사인 탓도 있지만 첨단 시설을 제대로 가동할 인력이 없는 것이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대경염직의 사례에서 보듯 밀라노 프로젝트 성공의 첫째 조건은 시설이 아닌 사람이다. 파리의하청기지였던 밀라노가 오늘의 밀라노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인력이풍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에는 사람이 없다. 지역에서 양성된 인력마저 대부분 서울로 뺏기고 있다. 대구 섬유산업이 이 인력들을 수용할 여력이 없었을 뿐더러 자세도 갖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추진되고 있는 밀라노 프로젝트는 시설도입에만 집중돼있다.

지역 섬유업계는 지금부터라도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이러한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설비를 놀리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지역 대학 및 연구소를 중심으로 '인재 풀(Pool)'을 만들어 부족한 인력이라도 결집해 총의를 모아야 한다.

밀라노 프로젝트 성공의 두번째 조건은 최고가 되겠다는 기업가 정신이다. 밀라노 기업인들은 자기가 만든 제품에 자부심을 갖고있다.

비엘라의 염색가공공장 아제타사의 알베르또 자닌 사장은 자기가 만든 천이 "비아그라처럼 힘을주는 원단"이라며 허풍을 떨었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역 섬유업체들은 어떤가. 특정 품목이 잘 팔리면 너도나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차별성이 없는데다 공급과잉이니 제값을 받을 수 없는 건 불문가지.

이러한 카피(Copy)문화의 범람으로 세계 최대의 화섬산지이면서도 공급자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바이어들에게 끌려다니고 있다. 제 살만 도려낸 게 아니라 남의 살까지 물어뜯은 것이다. 다른 업체가 쉽게 카피할 수 없는 차별화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 의지도 부족하다. 그저 신개발 원사를많은 업체에 공급하지 말라고 원사업체에 주문하는 정도다.

세번째 밀라노 프로젝트의 성공조건은 업종별.공정별 협조체제 구축이다. 밀라노의 패션디자이너들은 원사부터 제직.염색가공까지 모두 알아야 한다. 원단만을 골라 옷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기디자인에 필요한 원사.텍스타일 디자인.색상을 해당 업종 관계자들과 끊임없이 의논하고 모두 특별주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업종별.공정별 협조체제가 구축돼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밀라노 프로젝트와 관련, 섬유개발연구원.염색기술연구소.패션업계는 하루빨리 업무협약을 체결, 업종별 협조체제를 마련해야한다.

불화를 빚고있는 지역의 제직.염색업계가 화합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협조체제 구축을 위해 밀라노 프로젝트의 각 업종별 연구시설을 한 곳으로 묶어 종합연구단지(Complex)를 건설해야 한다고 섬유업계는 주장한다. 종합연구단지를 만들면 연구원들간의 교류를통한 업종별.공정별 협조관계가 훨씬 순조로워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염색기술연구소측은 염색디자인 실용화센터와 니트염색가공 개발센터의 부지를 이미민자로 내놓아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사업초기인 만큼 전시장과 현재 밀라노프로젝트에서 제외돼있는 섬유기계연구소까지 포함한 종합연구단지 건설로 사업방향을 전환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와 더불어 대구.경북이외의 다른 섬유산지와도 협력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문희갑 대구시장은 패션어패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대구.경북은 화섬산지여서 어패럴 소재로서 한계가 있다. 진주의 견직, 대전의 면직, 부산의 모직 등 천연 섬유산지를 끌어들일 필요가 여기에 있다. 천연섬유와 화섬을 섞은 교직물을 생산하면 화섬소비를 늘릴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 대구섬유산업만 육성하느냐는 다른 섬유산지의불만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세가지 조건은 밀라노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충분조건은문화예술 기반이다. 문시장은 "파리가 100년이 걸린데 반해 밀라노는 20년만에 세계 패션을 제패했다"고 강조한다.

대구도 노력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노력해도 금방 안되는 게 문화예술에 대한소양이다. 일회용 라이터를 만들면서도 분홍도 주황도 아닌 중간색상을 내는 밀라노인들의 색감을 대구사람들은 쉽게 따라잡기 힘들다. 밀라노 패션은 이러한 밀라노인들의 예술감각에서 나왔다.

이러한 밀라노인들에게 아무렇게나 옷을 만들어 파는 패션업체는 없을 것이다. 밀라노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선 섬유인프라 구축과 함께 문화예술적 소양을 배양하는 수밖에 없다. 밀라노는20년만에 이뤄지지 않았다.

〈끝〉

〈曺永昌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