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눈오는 날의 두가족

입력 1999-01-25 14:11:00

며칠 전 출근시간이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은 계절의 꽃으로 넉넉한 아침을 열고 있었다.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꽃으로 살아나고 인간의 손길로 지저분했던 도시는 하얀 예술품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었다.

하얀 운동장에서 어느 아버지가 두 아들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내리는 눈송이 사이 사이로 해맑은 함성이 들여왔다. 그들의 웃음은 때로 눈속에서 꽃이 되었다. 나는 모처럼 너무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행복한 그들의 모습에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한동안 지켜보았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덩달아발길을 멈추고 내 눈길을 따라왔다. 그때 경적소리를 내며 승용차가 멈춰 섰다. 와이퍼로 닦여진유리로 차 안이 보였다.

뒷좌석에는 털외투를 입은 꼬마 둘이 타고 있었다. 안경까지 덮은 커다란 마스크가 두 아이의 공통점이었다. 꼬마들은 차안에 흐르는 음악을 감상하는지 지긋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은 모처럼내려준 자연의 신비를 거부하고 있었다. 인공적인 보호막 속에서 삶의 질을 누린다고 시위하는지도 모른다.

문득 겨울 추위가 혹독할수록 여름 나뭇잎은 더 짙은 푸른빛을 낸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무나 인간이나 자연을 가로막는 차단막의 두께만큼 생체리듬을 망가지게 하는 것이 삶의 섭리인지도 모른다.

승용차 안의 꼬마들이 감기에 걸린 까닭을 알 것 같았다. 방학동안 자식들을 위해 자연과 인간을가로막는 차단막을 활짝 걷어준 부모는 몇이나 될까? 눈 내리는 날 아침 서로 다른 두 가족을 보며 생각해 본다.

김상삼〈아동 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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