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손자·손녀 사랑서 수준있는 '대화상대'로

입력 1999-01-20 14:00:00

할머니들이 달라진다.

대구시 남구 봉덕동에 사는 50대 여성 김상숙씨는 아침마다 TV 어린이 프로그램 '꼬꼬마 텔레토비'를 본다. 웬 텔레토비. 이유는 단 한가지. 외손녀 소원이(7세·안동유치원)와 스무스한 대화를위해서는 이 방법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이다. '젊은 할머니'의 이 작전은 대성공, 손녀와 세대벽(?)을 넘어선 대화 세계를 펼쳐간다.

보고싶지만 떨어져사는 외손녀와 본격적인 '전화 대화'를 나누기 전, 맛보기로 시작한 텔레토비얘기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면 스스럼없는 대화로 이어지고 친밀감은 더해간다. 김씨는 외손녀의스케줄을 훤히 꿰고 있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날 대화.

"소원아, 크리스마스에 할아버지한테 뭐받고 싶니. '보'(텔레토비에 나오는 막내)인형을 사 주실지…"

"할머니,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기뻐해서는 안되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해야한대"20년 시집살이에서 자식들은 부엌에서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똑바로 마주앉아 대화할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김씨는 "손주를 키울때쯤 생긴 시간 여유를 '생각하는 대화'를 통해 되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맹목적으로 잘해주기만하던 앞세대 할머니들과 달라진 풍속도를 그대로대변한다.

노정자(대구시 중구 남산4동)씨는 태어날 손자를 생각해서 대구삼덕교회 영아부 교사를 2년간이나 역임했다.

"젊은 엄마들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자녀를 마구잡이로 키우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깝다"는 노씨는손자가 인간과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영아부 교사를 역임했다고 들려준다.

끊임없이 책을 읽어주면서, 결국 인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아름답게 뜨개질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작은 질서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김뿌리(31·영남대 학생복지영화관 '보슈'대표)씨는 딸 고요나가 외할머니댁에 갔다오면 소위 할머니 레슨'발' 때문인지 훨씬 섬세하고 따뜻한 아이로 쑥쑥 자라는 걸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젊은 저희들이 몇자 배운 지식으로 뭘 주입하려는 좁은 시각보다 어머님이 보여주는 넓은 생각이 딸에게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많이 선사한다"는 김씨는 신식교육만 고집하며 '늙은 세대' '한물간 세대'로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몰아붙일게 아니라 경륜에서 오는 지혜를 받아들이는자세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손자 손녀는 키워줘도 다 소용없다"던 할머니들의 서러운 마음들이 점차 "확실히 키워주니 제대로 사람 구실한다"는 보람으로 바뀌면서 사람사는 근본을 밝혀주고 있다.

경북대 조진기교수(57세)는 "개인적으로도 자녀들이 어릴때 키워준 할머니와 특별한 관계를 뜨개질 하고 있다"면서 맞벌이로 바쁜 아내에게 자녀들은 할머니의 근황을 알려주는 정보통 구실을톡톡히 하며 할머니·할아버지의 절제된 감정이 차세대들의 인성을 순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들려준다.

이름뿐인 '노인의 해'보다 경륜을 앞세운 할머니·할아버지들의 무한 손자 사랑이 파이팅할 수있는 99년이 더 활짝 펼쳐지기를!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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