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보화 시대는 이제야 시작이다. 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오늘의 정보화란 곧 정보통신혁명을 일컫는다. 정보통신혁명이란 정보기술혁명과 통신혁명이 하나로 합체됨을 의미한다. 여기에 블랙박스가 있다.
정보화 시대를 연 것은 컴퓨터이지만 컴퓨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컴퓨터들이 모든 기계와 장비에 들어가고, 그것들이 날줄 씨줄로 촘촘히 얽힌 통신으로 연결될때정보화는 가히 혁명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컴퓨터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는 비트이다. 이 무게도 색깔도 냄새도 없는 정보의 유전자가물질속에 포함되어 통신망을 통해 빛의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책 잡지 신문 비디오 카세트처럼 다양한 물질에 포함되어 옮겨지던 정보가 전자자료로 변하여 광속으로 전달되는것이다. 그 결과 과거와 비교할수 없이 값싸고 직접적인 전달체제가 구축된다.
문자정보만이 아니라 음성정보와 화상정보를 함께 전달한다는 사실도 부각되어야 한다. 직접 만나는 관계를 거의 모방한 전자공간, 즉 사이버 스페이스가 이렇게 창출된다. 텔레비전과 컴퓨터와전화를 하나로 융합하는 공간이 곧 사이버 스페이스이고, 이 사이버 스페이스를 가능하게 하는매체가 멀티미디어인 것이다. 인터넷은 그 빛나는 상징물이다.
정보화가 가져오는 효과는 실로 폭발적이다.
전세계를 동시간대에 연결시키는 정보통신망의 형성, 생산과 물류의 자동화, 사무자동화, 재택근무, 사이버문화, 전자민주주의, 전자상거래, 가상현실 등으로 표출되는 정보화의 효과는 한마디로사회구조 및 인간 생활 전체의 변혁을 가져오고 있다.
그래서 정보화를 새로운 문명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산업혁명이 자본주의화를 가속화시켜 근대문명을 꽃피웠다면 정보화 역시 생산양식과 생활양식, 그리고 의사소통양식의변화를 통해 산업혁명에 비견하는 만큼의 문명사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90여년전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사후 조사에서 밝혀진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만일 타이타닉호에 있었던 무선통신이 제대로 이용되었다면, 수천명의 생명이 2마일 깊이의 바다 속에 수장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타이타닉호의 무선통신은 부자들의 장난감으로만 쓰였고, 배가 거의 다 가라앉았을 때야 비로서무선통신으로 조난 신호가 타전되었다. 그러나 이를 받을 사람들이 무선통신을 쓰지 않고 방치하거나 주파수 혼란이 야기되어 구조의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이 인용해 유명해진 이 이야기는 정보화의 의의에 대한 여러가지 시사점을 함축한다.
하나, 정보화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인간생활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유익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둘, 설비만 갖추고 이용되지 않는 정보화는 의미가 없다. 셋, 정보화는 필요한 시점과 장소에서 원하는 대상과 언제든지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아주 당연한 것 같은 이런 명제들이 사실은 현재의 정보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들로 새겨질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현실의 정보화는 반드시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정보화는 미리 예정된 방향으로 저절로 진행되지도 않으며, 더구나 만능의 해결사도 아닌 것이다.
세상 사물이 모두 그렇듯이 정보화 시대에도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드리운다. 이를 좀더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보화에 대해 흔히 갖는 오해 몇 가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우선 정보화는 인간이 세상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는 만큼 세상을 더욱 확실하게 통제하게 될것이라는 관념을 낳는다.
현실은 그런 관념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정보화가 지구촌을 하나의 마을로 만들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은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정보화가 가속도를붙힐수록, 세상은 그 몇배의 가속도로 복잡해진다.
인간이 정보를 아무리 많이 생산한다 하더라도, 그보다 수천배 수만배 복잡해지는 한 세상을 다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때문에 세상은 확실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해진다. 불확실성의시대에 예측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누가 아시아의 경제위기, 한국의 IMF행을 1년 전에 예상할 수 있었는가? 2000년이 오면 Y2K 문제가 어떻게 표출될 것인지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 즉 복잡성과 불확실성이야말로 정보화 시대를 알리는 내재적 특징인 것이다.
다음으로 정보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관념 역시 현실과 맞지않는다. 지식 정보화 시대에 집중적으로 혜택을 보는 집단, 전문지식인 및 지식근로자층은 전세계적으로 보면 5%도 안되며, 선진국의 경우에도 25%를 넘지 않는다. 정보화 시대가 '5% 인구를 위한 사회'로 되어간다면 이로인해 발생하는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직업없는 성장'으로 인한 고실업, 비지식 근로자의 주변층화 현상, 계층 세대 성을 가로지르는 '컴맹층 또는 컴약층' 문제, 정보부국과 빈국의 격차 확대 등 새로운 불평등 문제는 정보화 시대의가장 중요한 해결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정보민주주의와 정보공동체는 이 불평등 문제 해결을 겨냥하는 담론이어야 한다.
또하나 정보기술을 맹신하는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컴퓨터만 들여오면, 또는 정보시스템만 갖추면생산성이 저절로 높아질 것으로 아는 것이다. 정보화는 최적의 사회시스템과 어울릴 때만 최대의효과를 갖는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정보화는 또하나의 짐이 될 수도 있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앞다투어 정보화를 추진하던 기업들이 경제위기가 닥치자 가장 먼저 투자에서 손떼는 분야가 정보화이다. 이는그동안 정보화를 통해 우리 기업들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반증한다.정보화는 조직혁신과 사람들의 마인드 변화, 그리고 정보의 공유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의 입구에 서 있는 우리 입장에서 절실한 것은 정보화 시대를 제대로 안내할 수 있는철학적 비전과 문화적 담론이다. 정보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보화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 이상은 자율과 창의, 협력과 공유, 민주주의와 공동체가 살아있는 자기 창조적 네트워크형 사회일 것이다.
약력
△고려대 대학원 졸 사회학박사
△중앙일보사 기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역임
△현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중요저서
△정보화의 문명사적 의미와 국가전략의 방향
△대전환 21세기, 미래와의 대화(공저)
△현대노동과정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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