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20세기 문화(19)-포토 저널리즘

입력 1999-01-09 14:03:00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또하나의 범상치 않은 문화적 기류가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포토 저널리즘(Photo Journalism).

그것은 전후(戰後) 독일에서 비약적인 발전상을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중대한 정치·경제적 위기와 함께 카이저제국이 무너지고 1918년 바이마르공화국이 들어섰다. 14년간의 바이마르공화국체제아래 풍미했던 자유주의 정신은 전후의 피폐함속에서도 예술과 문화의 꽃을 피웠다.

소설가 토마스 만과 카프카, 화가 칸딘스키, 클레, 프란츠 마르크 등의 활약과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 프로이트의 세계적 명성 등 독일의 예술과 문화는 전성기를 만났다.이런 흐름속에서 전시중 엄격한 검열을 받아야했던 신문·잡지도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독일의 모든 대도시에서 사진잡지가 발간되기 시작했다.

특히 베를리너 일루스트리에테와 뮌히너 일루스트리에테는 각각 발행부수가 200만부에 육박할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제 신문과 잡지에서 그림은 사진에 자리를 물려주고 사라져 갔다. 사진기자들은 대개 중산층또는 귀족계급 출신으로서 지성인에다 예의있는 신사들이었다. 오페라나 무도회 등의 행사때 그들은 예복을 갖춰입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 사진기자군단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은 에리히 잘로몬(1886~1944). 헤르 독토르(박사님)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폭풍으로 쓰러진 나무에 맞아 사망한 한 여자의 죽음을 한 사진가에게 알렸고 찍은 사진을 신문사에 팔아 100마르크를 받았다.

그러나 자신은 단지 10마르크만 받게되자 직접 사진을 찍는게 낫겠다싶어 이튿날 사진기를 구입한 것이 사진기자가 된 계기였다.

잘로몬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는 틈에 재빨리 사진을 찍는 것을 시도한 첫번째 사진가였다.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셔터를 누름으로써 '솔직한 사진'을 창조해 냈고 이는 근대적 포토 저널리즘의 효시가 됐다.

잘로몬은 사건이 있는 곳에는 언제 어디서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국제회의에서 초청하는 사진기자가 됐으며, 어느 장소에 입장하기보다 쫓겨나는 것이 더 어렵다는것을 알게 됐다. 1928년부터 1933년까지 단 5년동안 세계의 유명인사들과 유명사건들을 종횡무진으로 사진찍었던 그는 결국 1944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생을 마쳤다.

당시 사진신문의 최대 매력은 센세이셔널한 사진으로 독자들의 눈을 끄는 것이 었으므로 잘로몬을 비롯한 사진기자들은 계략을 사용해 사진을 조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출현과 함께 독일의 민주적인 분위기는 막을 내렸다. 수천명의 지식인·예술가들이 망명길에 올랐다. 베를리너 일루스트리에테의 편집장 쿠르트 코르프는 미국으로, 시테판로란트는 영국으로, 나중에 로베르 카파라는 가명으로 유명 사진가가 된 안드라이 프리이드만은 프랑스로 피신했는 등 많은 사진가들이 해외로 빠져나감으로써 현대적 사진저널리즘을 전파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즈음 프랑스에서는 독일 사진신문의 자유주의 정신을 계승한 잡지 '뷰'가 등장했다. 신문기자이며 출판업자·화가인 뤼시앙 보젤(1886~1954)이 창간한 '뷰'는 한장의 독립된 사진을 싣는 고전적 유형을 깨뜨렸으며, 제르맨 크룰, 앙드레 케르테츠, 펠릭스 H 만 등 당대 최상급 사진가들을 대거 고용했다. 공화파 스페인병사 한명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을 잡은 카파의 가장유명한 사진도 1936년 뷰잡지에 최초로 실렸다.

독일에서 히틀러의 집권으로 모든 사진신문·잡지가 정권에 예속된지 3년후인 1936년 미국에서는 새로운 사진잡지가 등장했다. '라이프'(Life)지의 탄생이다. '삶이 시작하다'(Life Begins)라는 사진설명과 함께 산부인과 의사가 갓난아기를 두 팔로 안고 있는 사진이 창간호의 첫 페이지를 가득 채운 이 잡지는 거의 전적으로 사진에 바탕을 둔 새로운 매스미디어로 선보였다.창간때 46만6천부에서 1년후 1백만부, 72년에는 8백만부 등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라이프지의 성공을 모방한 사진잡지들이 세계 곳곳에서 출현하게 됐다.

타임(Time)지를 창설한 헨리 R 루스에 의해 창설된 라이프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싣지않으며,삶의 그늘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햇빛 가득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장밋빛세계로 상상하게끔 유도했다.

타임사의 방대한 조직을 바탕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던 라이프지는 엄청난 제작비와 인플레이션등의 영향으로 이후 60년대말에 이르러서는 적자경영을 하게 됐고 마침내 1972년엔 헤럴드 트리뷴지가 1면에 '라이프 36세로 가다'라고 대서특필했던것 처럼 발행중지돼 사진저널리즘의 한 시대가 종막을 고했다. 이후 라이프지는 반년주기로 특집호를 내다 지난 78년부터 월간지 형태로발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가공할만한 라이벌인 텔레비전 때문에 더이상 옛영광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全敬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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