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꿈꾸는 환절기

입력 1999-01-01 14:26:00

코트 주머니에서 디스와 라이터를 꺼내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언제나처럼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다 얕게 엉덩이를 걸치고 담배를 피우려던 나는 코끝이 시큰거렸다.

∴나비잠 놀이방∴

색종이로 오려붙인 붉고 푸른 꽃밭 한가운데 노랑나비가 날개를 펼친 채 사뿐 앉아 있고 그 날개를 요람 삼아 천진하게 잠든 아이의 얼굴이 그려진 놀이방 창문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계단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기만 해도 은지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올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중충하게 색이 바랜 붉은 벽돌 건물과 계절 따라 알록달록 바뀌는 놀이방 창문의 종이 꽃밭을 덤덤히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런 습관이 잠시 아이를 잊게 했던 것일까. 나는 들고 있던 디스 한 개피를 생으로 분질러 창문밖으로 던져버렸다. 보육사의 손을 뿌리치며 한사코 내 품으로 파고들던 은지를 떼어내며 으득,이빨을 깨물었던 것처럼.

어떻게 저길 보낼 생각을 했을까. 출근 시간에 쫓겨 무조건 아이를 안고 나올 때만 해도 저길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처가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출입구에 가까운 101동이었기때문에 나가다가 잠깐 차를 세우고 은지를 들이밀려고 했었다.

어제 일로 잔뜩 화가 난 장모가 끝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내가 전화를 한다고 해서부랴부랴 달려올 장모도 아니었지만 나 또한 비굴하게 기어드는 목소리로 미주알고주알 그 일을해명하는 짓 따윈 하고싶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기척이 났고 나는 은지를 문 앞에 세워둔 채 돌아섰다. 아무렇지도 않은듯 인사를 받기가 거북할 장모를 배려해서였다.

"내 집에 무슨 일인가"

그렇게 묻는 장모의 목소리는 짐작했던 것보다 더 싸늘했다. 15층까지 올라가버린 엘리베이터를기다리기도 뭣해서 막 계단을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은지는 외할머니의 얼굴이 반가웠던지 얼른 장모의 품에 안기려 했다. 그러나 장모는 은지를 피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허, 사람 성질도 참. 은지야, 할애비한테 오련?"

내 눈치를 살피며 허둥지둥 은지를 안아들이려는 장인의 손을 떨치며 나는 아이를 안고 계단을내려 왔다.

나비잠 놀이방 보육사는 패악을 떨며 우는 은지를 껴안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연신 걱정 말라고 했다.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은지의 울음이 뚝 그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이래두요, 애들은 눈치가 빤해서 아빠 믿고 떼쓰는 거지, 눈에 안보이면 잘 놀고 그래요. 조오기좀 보세요. 은지보다 더 어린 애들도 있는데 제가 모성적인 사랑으로 보살피니까 엄마들이 믿구보내거든요 호호"

엄마라고 다 그럴까. 나는 보육사의 낯간지러운 자찬에 맞춰진 구색이긴 해도 모성애란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그러자니 모성애 따윈 마루 닦는 걸레 정도로 취급하는 아내가 원망스럽고미웠다. 아무리 어려도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제 몫의 고통이 있게 마련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여자가 내 아내다. 결혼 이후 제대로 된 밥상을 받아본 적이 있기를 하나, 제대로 세탁해서 개켜진 옷을 입어보기를 했나, 이따위 거지꼴로 살려고 장가든 줄 아냐고 버럭 화를 내면 그녀는새파랗게 넘어가면서 한마디 했다.

"꿈 깨"

사회 전체가 환절기를 앓고 있는 터에 오직 생계만을 걱정하면서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따위 허튼 꿈타령이냐, 하는 식이었다. 직장을 잃고 가정이 깨지면서 순식간에 거리로 나앉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눈에 불을 켜고 덤볐을 거라고, 그러니 그따위 허튼 꿈 들먹이며 사람 괴롭히지말라고 되려 나를 비난했다. 나는 매번 어안이 벙벙했다.

허구헌날 실업자들의 뒤숭숭하고 고단한 사연만 듣다보니 그리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게으름과 솜씨 없음을 엉뚱하게도 사회적인 분위기에다 엮어버리는 아내가 밉살맞았다. 따지자면야아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나는 아내의 그런 시각마저 꼴사납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직장이 노동청 고용보험과가 아니었다면 모를까, 직업의 연장선에서 나를 훈계하려 드는 것이 영 못마땅했던 것이다.

내가 아내와 통화를 시도하는 동안 공공근로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아침 기온이 영하 3도로뚝 떨어지는 날씨가 며칠 째 계속되자 그들은 두툼한 점퍼에다 목도리와 장갑으로 중무장을 하고나왔다. 나는 오늘도 그들을 인솔해서 관내 비슬산으로 나가야 한다. 계절적으로 겨울의 초입부터이듬해 봄까지 가장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시기여서 한시적이나마 앞으론 산불 예방과 감시에 공공근로자들이 가장집중적으로 투입될 것이다.

"어이 한 주사, 근무 시간에 웬 전화가 그리 길어. 저 사람들 말야, 산림 담당이 근무 태만할 수록 얼씨구나 하고 늘찐거리는 거 몰라서 그래? 안 그래도 공무원 알기를 뭐같이 아는 세상인데말야. 깜냥껏 잘하라구"

계장은 아까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듯 기어이 참견을 하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턱짓을 했다. 어서 나가보란 뜻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꼭 쥐며 일어섰다. 턱짓으로 뭘 시키려는 인간치고제대로 된 인간이란 없지. 목구멍에서 기어오르려는 그 소릴 꾹 참으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다녀오겠습니다"

내 인사에 빙글 의자를 돌려버리던 계장의 목소리가 사무실 문을 채 나오기도 전에 나를 따라붙었다.

"한 주사 저 친구 오늘 안색이 안 좋네, 지각까지 하고 말야. 왜 저런대?"

누군가에게 그렇게 묻고 있는 계장은 지저분한 버릇과는 달리 꽤 예민하게 사람을 관찰하는 구석이 있었다. 걸핏하면 코털을 뽑아 후후 불어대고 코딱지를 떼어 슬쩍 바지에 문지르면서도 볼 건다 보는지 방심했다간 뒤통수를 얻어맞기 일쑤였다. 다른 직원들은 서로의 안색 따위가 시퍼렇거나 누렇거나 알 바 아니란 듯 모른척 넘어가도 계장은 꼭 본인 아니면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기까지 하니 말이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까지 굶었으니 내 낯빛이 어떠리란 것은 나도 안다. 그렇다고 기운 없어서현장에 못나가겠다고, 다른 직원을 인솔자로 보내면 어떻겠냐는 소리도 차마 할 수 가 없다. 그랬다간 또 무슨 소리를 들을 지 모른다.

내가 속한 산업계는 속칭 노가다계라고 해서 관내의 온갖 시시껄렁한 일들에 다 동원되는, 그야말로 동네 머습 집합소인 셈이었다.

태풍 예니가 지나가도 난 다음 한 주민은 무너진 자신의 집 담을 복구해 달라고 부득부득 떼를쓰기도 했다. 공무원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봉급을 받으니 그에 합당하게 봉사하는 종복이란소리도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머슴 중에서도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적다는 이유로 꼴머슴 취급을 당할 때면 매우 기분이 상한다. 내가 이곳으로 발령받은 지는 이 년 정도 되었고 직급으로만 따지자면 7급 행정직 공채로 들어온 내가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는데도 말이다.나는 짐짓 큰소리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출근을 확인한 뒤, 차나 오토바이를 갖고 온 사람들은 먼저 출발시켰다. 뒤쳐진 몇몇은 공익요원의 차를 타고 가면 되었다. 그들은 다 출발시킨 뒤 승용차로 나는 뒤따랐다. 다시 핸드폰을 켰다.그 새 아내의 목소린 상큼하게 한 옥타브 높아져 있었다.

"나야"

"왜 또. 바빠 죽겠는데"

나란 걸 확인한 아내의 목소리는 금새 팍팍하고 짜증스럽게 변해버렸다. 보지 않아도 훤한 아내의 표정이며 제스처까지 떠올라 아침의 일을 사과하고픈 생각은 훌쩍 사라져버렸다. 아내는 걸핏하면 턱짓을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조건 기분이 나빴던 건 절대 아니다.

그녀의 턱짓은 기분이 아주 좋거나 나쁠 때, 극단적인 두 가지의 표정으로 나나났다. 기분이 아주좋을 땐 눈이 아닌, 약간 들어올린 턱으로 갸웃이 나를 흘기며 함빡 웃었는데 그럴 땐 정말이지그녀도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녀가 턱짓을 할 때란 그 반대되는오늘 아침에 내가 참지 못하고 아내의 따귀를 때린 것도 바로 그 턱짓이 원인이었다. 내 코앞에다 바짝 들이민 채 아래위로 흔들어대는 그녀의 턱에선 싸움닭 같은 결기가 느껴졌다. 그럴 일이아니었다. 그간의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당장 둘 다 출근해야 했고 은지를 어떻게 하느냐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었다. 더구나 사무실이 KBS 방송국 근처에 있는 그녀는 출근 거리가 멀어서 일찍 나가야 했다.

"네가 책임져. 아이를 업고 출근을 하든, 지고 놀러를 가든 난 몰라"

"그러지말고 장모님께 전화 한 번 더 해봐. 지금이라도 오시겠다면 내가 조금 늦더라도 기다렸다가 은지 맡기고 가면 되잖아"

"그럴 걸 왜 엄마한테 좁쌀영감처럼 잔소릴 해가지구 이런 일을 만드냐말야. 아이, 난 몰라. 난출근할 테니 당신이 엄마한테 전화를 하든 어쩌든 알아서 해"

내가 사정을 하는데도 아내는 예의 턱을 떨며 내 앞에서 소릴 질렀다. 은지 따윈 안중에도 없어보였다. 우리가 실랑이를 벌이는 걸 빤히 쳐다보던 아이는 빨고 있던 우유병을 놓치며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미처 삼키지 못한 우유가 허옇게 입가로 흘러나왔다.

숱이 적고 노르께한 머리에 간산히 매달렸던 토끼방울이 아이의 손에 뜯겨 나왔다. 울면서, 그냥우는 것도 아니고 꼭 제머리를 헝클러뜨리는 이상한 버릇이 아이에겐 있었다. 아내는 거지꼴로서서 우는 아이를 힐끗 쳐다보더니 가로막고 선 내 가슴팍을 밀었다.

현관문을 나서는 그녀의 뒷덜미를 움켜잡고 따귀를 날린 건 거의 한 순간의 일이었다. 스스로도놀래서 무춤해진 나를 노려보던 아내는 어깨에 걸쳤던 가방을 풀어 사정없이 나를 내리쳤다. 그리곤 꽝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아까 사무실에서 내가 전화를 했을 때 은지를 어떻게 했냐는 걱정을 내비치기만 했었어도 나는아침의 일을 사과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내는 잠깐 기다리란 말만 해놓고 여전히 상담자와무슨 얘긴가를 주고받는 것 같았고 나는 계장의 눈총을 받으며 전화를 끊어야 했다.그녀의 일에 대한 집착은 은지를 낳은 직후,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마침 나와 같은 사무실 호병계에 있던 여직원이 아이 문제로 사표를 썼던 게 생각나서 농담 삼아 "애나 키우지", 라고 말했다가 맞아 죽을 뻔했다. 부기가 빠지지도 않은 두루뭉실한 얼굴에 째진 듯 박혀 있던 눈이 휙 돌아가면서 은지의 우유병과 분유통이 마구 날아왔다.

"넌 그만두고 애 키울수 있어?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하면 당장 이혼이다 알아?"독침을 쏘듯 악을 쓰던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을우선으로 두는 것 말이다. 그녀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여전히 나를 뜨악하게 대한다고 느껴지자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넌 은지 걱정도 안되니? 애가 어떡하고 있는지 한번쯤 물어보기라도 해야지, 다른 여자들은 모성애가 넘쳐서 탈라던데, 도대체 니가 얼마나 별종인 줄 알기나 해?"

"그래 알았어, 잘 알고 있으니까 자격 있는 너나 애 잘 보살펴. 난 너처럼 공공근로자들 인솔하고다니면서도 집안 일에 신경 쓸만큼 업무가 한가롭지 않으니깐. 상담자들 밀려서 사적인 전화 오래 못해"

아내는 그렇게 쏘아붙이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액셀레이터를 깊숙이 밟고있었던지 느릿느릿 고갯길을 올라가는 트럭 꽁무니가 눈앞으로 확 당겨져 왔다. 나는 들고 있던핸드폰을 조수석에다 던져버렸다.

아무래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가야겠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심화를 날려보내듯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었다. 내리 두 끼를 굶은 빈속에 급하게 빨아들인 담배 탓인지 아릿한 현기증에다 메스꺼운 느낌마저 든다. 누나가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어머니 얼굴도 모르고 자라서 누나 치마폭에 감싸여 컸던 나는 그녀가 엄마나 다름없었다. 배가고프니까 더욱 누나 생각이 났다. 멀지도 않은 성서에 사는데 나는 배고플 때가 아니면 거의 누나를 잊고 살았다. 가끔씩 점심 먹으러 들러서 내가 누나와 비교해 아내의 요리 솜씨를 타박이라도 할라치면 누난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다 그런 거다. 제가 먹고 자란 음식에 인이 박혀서 그렇지 그게 무어 대수라고. 누나가 뭐래든 나는 얼큰한 동태찌개로 맺힌 속을 풀고 싶어진다. 전화는매형이 받았다.

"아니, 출근하시지 않았어요?"

"으응, 좀 있다 하려고, 처남 오랜만이야?"

"죄송해요. 이따가 점심 시간에 잠시 들렀으면 해서요"

"그래 그럼. 누나한텐 그렇게 전할게. 배추 장사가 왔다고 밖에 나갔거든"

매혀이 또 직장을 잃은 건 아닐까. 십년 넘게 근무하던 염색공장이 삼월에 부도가 나면서 매형은직장을 잃었다. 그 뒤로 두번인가 다시 회사엘 나갔는데 한군데는 문을 닫아버렸고 또 한 군데는순전히 노력봉사 하는 것마냥 월급을 주지않더라고 했다.

최근에 무슨 나염 공장인가 하는 곳에 취직이 되었다고 들었지만 그마저 신통찮을까봐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누나와 통화를 했을때 자신도 공공근로자 모집에 신청 자격이 주어지냐고 묻기에 나는 웃고 말았다. 매형 직장 있고, 누나 전업주분데 자격이 어딨어, 했더니 얘, 그래도… 하면서 슬쩍 말꼬리를 흐리던 것이 생각났다.

하긴 지난해에 비해서 실업자가 백만명 이상 늘었다고 난린데, 갈수록 촘촘해지는 실업의 그물은불특정한 다수 누구에게나 덮씌워질 수 있는 문제였다. 집안 일에 소홀한 아내더러 사는 것 같이좀 살자며 그깟 직장 때려치우면 내가 벌어 먹여살린다고 마음에도 없이 큰소리 친 적이 있다.그랬더니 아낸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이, 자신의 일터로 한 번 찾아와서 사람들이 어떻게들 살려고 발버둥치는지 두눈으로 똑똑히 보고 가라고 제 눈을 부릅떴다.

바람이 제법 불 것 같았다. 산불 감시에 동원된 공공근로자들이 산기슭을 바람막이 삼아 옹기종기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자, 다들 오셨죠? 그럼 어제 정해준 위치 다들 알고 계실 터니까 자리 꼭 지키시고요. 특히 등산로 주변에서 순찰 도시는 분들, 춥다고 구덩이 파서 불 쬐는 건 좋은데 발화물질 없도록 주변 깨끗이 단속하는 거 각별히 유념하시고, 만약 순찰구역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하면 즉시 무전기로면소로 연락하셔야 됩니다. 그럼 수고들 하십시오"

나는 매번 반복되는 주의 사항이지만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어이구, 다 알고 있소, 하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들은 제각각 자신의 순찰 구역으로 돌아갔다. 김일구씨가 맡은 이구역엔 1km도 못되는 간격으로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다.

조그만 보온병에다 커피를 담아와선 내게도 꼭 한잔 권하는 김일구씨가 내년에도 이 일을 할수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갈수록 공공근로자 모집 경쟁률이 높아져 내년 상반기엔 5:1도 넘을거라는 전망도 미리 나와 있다. 25,000원 받는 일당이지만 석달 동안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는점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김일구 씨를 쳐다보며 다정스럽게 말했다."아저씨, 너무 떨지 마시고 구덩이 파서 불도 쬐고 그러세요"

"어이구, 그러다 불내면 큰일 나게. 산불 감시하러 나왔다가 불낸대서야 말이 되나""워낙 조심하시니까 괜찮을 겁니다. 아침마다 보온병에 커피 담아준다는 따님, 일자린 구했습니까"

"웬걸, 하도 답답해서 전에 다니던 홈플러슨가 거기다 아르바이트 신청까지 했는데 몇백명이나앞에 줄서서 기다린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전에 그 자리 일 이년짜리 계약직으로 돌려서 계속다녔더라면 좋았겠다고 후회하던걸 뭐"

나는 김일구씨의 말을 듣고 있자 실업자로 북적이던 아내의 사무실 풍경이 떠올랐다. 보름 전엔가 노동청 산업안전과에 볼일이 있어서 남부사무소를 찾은적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그냥 나오기도 뭣해서 아내가 일하는 고용보험과로 가보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실업급여를 신청하거나 구직 등록을 하려는 사람, 재취업 교육 신청까지 해서 발 디딜 틈도 없이북적거렸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창구에 앉아 상담을 하는 아내를 지켜보았다. 아내의 상담자는허수룩한 차림의 오십대 아저씨였다.

그는 어릿어릿하게 뭔가를 아내에게 묻고 있었다. 필경은 직장을 잃었을, 그래서 얼마간의 실업급여라도 받아 생계를 이어나가야 할 그 입장에선 모든게 생소하고 낯설었던 모양이었다. 돌아서다가 되묻고 그러길 몇 번이나 반복하는데도 아낸 그때마다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하게 답변하는 것 같았다.

집에만 들어오면 결기를 돋우며 싸움닭처럼 변해버리는 그녀와 철저히 프로로 일하는 직장에서의그녀, 나는 아내의 그런 두 얼굴을 겹쳐보려 애쓰긴 했지만 이해할 순 없었다. 나도 그렇지만 아낸 집에선 무조건 쉬고 싶어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가 퇴근하면 장모는 돌아갔고 은지와나는 배고픔을 참고 아내를 기다렸다.

냉장고엔 냉동만두나 햄 따위, 너절한 인스턴트 식품만 가득했고 정성이 들어간 밑반찬 같은 건아예 없었다. 욕실엔 아침에 벗어두고 간 속옷이 그대로 처박혀 있었고 발치에 걸리는 것이 장난아낸 누구든 시간이 나는 사람이 청소며 빨래 좀 하면 안되냐고 매번 목청을 돋우었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어쩌다 마음먹고 한번식 세탁기를 돌리거나 청소를 해줄라치면 그날은 잘한다고 추어 올려놓고 이튿날이면 어제처럼 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그녀의 술수에 말려들 턱이 없었다.

내가 '여전사 삼인방'이라고 이름 붙여준 장모와 아내, 처형까지 그들 세 모녀의 특징은 하나같이솜씨가 없으면서 입심만 세고 성깔이 부러진다는 거였다.

그들 입심의 도마에 오른 대한민국 남자들은 거의가 홀라당 까발려지고 단죄 당한 채 폐기처분되었다. 물론 그 속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나란 것도 안다. 삼인방은 하나같이 나를 좁쌀 취급했으니까. 게다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까르륵 넘어가는 소리중에는 꼭 은지 출생의 비밀이양념처럼 묻혀져 있었고 덧붙여 나를 아내에게 매달린 뒤웅박 신세쯤으로 결론짓곤 했다. 하긴아내 쪽 입장에서 본다면 굳이 못할 말도 아니긴 했다.

아내와 나는 대학 동창이었다. 정원의 절반이었던 수학과 여학생들 중에서 못생긴 얼굴로 단연두드러진 그녀는 학교 때부터 성깔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만약 그 인물로 공주 행세나 하려 들었다면 가관이었겠지만 주제 파악이 빠르고 입심도 세서 어디가도 뒤쳐지진 않았다. 같은 과의 정수 녀석이 잠시 그녀 곁에 얼찐거리면서 봉선화연정 따위를 불렀던 기억은 있다. 건드리면 톡, 쏘는 땡삐같은 정화야, 어쩌구 하는게 재밌어서 우린 그때그녀만 보면 너나없이 그노래를 불러대곤 했다.

그런 그녀를 다시 본것은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지금 근무하는 이곳으로 발령을 받은 두달뒤였다. 누나는 혼자 자취하는 나를 꽤나 염려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출근을 하게 되자마자 에코러스에 떠억하니 신청을 했던 모양이었다.

거기서 주선한 첫 번째 맛선 자리에 그녀, 지금의 아내가 나타나게 된 것은 필연적 운명인지, 운명의 필연성인지, 아무튼 그런건 따질것도 없이 무척 반가웠다. 지금으로선 저나 나나 속이 빤하게 들여다보이는 경력 운운 따위는 입에 담지도 않지만 그때 그 자리에선 한참 경력자인 그녀가그렇게 돋보일수 없었다.

그녀 역시 내가 그 어렵다는 7급 공채를 뚫은 것이 신기하다고 했고 같은 배를 타게 되어서 기쁘다고, 서슴없이 손을 내밀어 내 손을 꽉 쥐어주었다.

아내는 그런 여자였다. 세번째인가 만났을때 우린 같이 잤다. 얼마 후 그녀는 임신을 했는데 낳고싶다는 말을 했고 나는 그걸 청혼으로 받아들였다. 속도위반 덕분인지 결혼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처가의 주도하에 속전속결로 처리되었다.

나를 두고 저울질하면서 그나마 낙점을 주었던 건 내 직업이 7급 공무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나는 처가의 그런 속셈을 훤히 꿰고 있었지만 그런 일로 해서 뭐 섭섭하다거나 그렇진 않았다.나로선 사춘기때부터 품어왔던 꿈 하나를 이룬 셈이었으니까.

누나는 내가 장가를 들자 감격해 마지않았다. 시누이로서 올케의 약점을 잡을라치면 헤아릴 수없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누난 그런게 없었다.

내가 하도 이쁘고 아까워서 올케는 덤으로 얻는 것 같다고, 덤으로 받은 걸 좋으니 싫으니 따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기 오는 걸음에 놀이방에 데려다 둔 은지를 저녁때까지 누나네에 맡길까생각해봤지만 그건 안될 것 같았다.

은지로선 일년에 두어 번 보는 고모나 놀이방 보육사나 낯설긴 마찬가질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대로 귤과 배를 사고 고기도 넉넉히 사서 그런지 봉투가 제법 묵직했다. 누난 괜한 것 많이 샀다고 또 나무랄 것이다.

"빨리 먹고 가야해"

앉자마자 빚쟁이처럼 밥을 독촉하는 내 앞에 뚝배기가 놓여졌다. 뚜껑을 열지 않아도 그게 무슨찌갠지 고소하게 피아오르는 냄새만으로도 알 것 같다.

"동태 알 밴 거야?"

"그래. 알 밴거 고르다가 주인한테 핀잔들었어. 그만 주무르고 아무거나 들고 가시오. 그러더라"나는 가운데토막을 골라 뱃살을 젖히고 알부터 꺼내 먹었다. 목이 메었다. 누나는 천천히 먹고 가라며 배추전과 시금치나물을 자꾸만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은진 잘 있어? 올케도 별 일 없구?"

누난 궁금했던 안부를 한꺼번에 물으며 내 안색을 살폈다. 차마 넌 얼굴이 왜 그러니 소린 못하는 것 같았다.

"매형…괜찮은 거야?"

나는 태슈를 뽑아 입술을 닦아내며 누나를 쳐다봤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한번도 경제적으로풍족해본 적이 없었던 고단한 살림을 살아낸 티가 눈꼬리로, 목덜미로 자잘한 주름으로 잡혀 있었다.

"괜찮지 그럼"

"…"

나는 화장실 가는척 하면서 지갑을 꺼내 만원만 남기고 몰래 숨겼다. 옷걸이에 걸린 누나의 낡고보풀이 핀 가디건 호주머니에 그 돈을 슬적 밀어넣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핑 돌았다.

누나네에서 점심을 먹은뒤 곧장 현장으로 왔다. 조금씩 바람이 이는게 오후가 되었는데도 날씨는풀릴 기미가 안보였다. 사람들이 띄엄띄엄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순찰 구역을 한바퀴돌고 나서 산기슭에 선 허씨 옆으로 다가갔다.

"한 주사 같은 사람은 무슨 걱정이 있을꼬. 공무원이야 밥그릇 떨어질 일이 있나, 봉급 못받아서굶을 일 있나"

털목도리로 두리두리 감싼 얼굴에서 허씨의 눈이 교활하게 번득였다. 그가 엉너리를 떠는 걸로보아 내가 어서 여길 지나가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원래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는 서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던 나는 돋워진 성질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이럴까봐 제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잖습니까. 누굴 잡으려고 이래요.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서너 삽 정도 파낸 조그만 구덩이 주변으로 두어 평 불길이 번져나간 자국이 검게 남아 있었다.불을 끄느라 후려친 생솔가지들도 그대로 널려 있었다. 내 고함에 헛기침을 하며 먼 눈을 팔거나공연히 거멓게 불탄 자국만 발로 비비면서 허씨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한 번 더 조심하란 소릴 토달며 돌아섰다. 등뒤에서 허씨가 아니꼽다는 듯 쳇쳇거렸다.

"쳇, 책임 좋아하시네. 그럼 뜨신 차안에 앉은 놈이 책임지지 한데서 벌벌 떠는 내가 책임질까"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꾹 참았다. 허씨의 성미를 알기 때문이다. 김일구씨완 달리 허씬 어떻게든 시간만 때우려고 잔꾀를 부렸다.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 그들을 데리고 농가에 벼 베기 지원을 나갔을 때다. 한창 속알이 여물어갈 즈음에 태풍 예니의 기습을 받고 침수까지 됐던 터라논바닥은 죄다 누워버린 벼들로 그득했다.

콤바인도 맥을 못 추니 저걸 어떡하면 좋으냐고, 가장자리를 둘러 베고 있던 논주인의 얼굴이 시름깊었다. 흙먼지가 풀썩거리는 논에서 엉덩이를 빼며 눈치만 살피던 허씨는 새참만 눈이 빠지게기다렸다.

전례로 봐서 최소한 막걸리와 삼겹살 볶음이라도 나올 걸로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논 주인이 내온 빵을 씹으며 그는 주인까지 합께 씹더니 급기야 김일구씨까지 싸잡았다. 제 논도 아닌 터에이깟 굳어빠진 빵조각 하나 얻어먹으려고 그리 죽을둥 살둥 낫질을 했냐는 거였다. 멀찌감치 서서 허씨의 수작을 지켜보았던 나는 그후론 은근히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몇마디 내 입에서 풀려나온 말들은 금방 부풀려져 그의 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건너다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차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허씨 말처럼 나는 걱정 없이 사는, 가진게 많은 사람인가를. 사람들이 나의 겉모습을 평가하면서 그렇게 보아 줄 때마다 당혹스러웠지만 그건 그들 탓이 아니지 않은가.

깨어진 꿈과 결핍감에 시달리는 내속내를 그들이 모르는 이상 해명할 도리는 없다. 어제 신문이었던가 독일의 일간지에 보도된 '국민행복도'란 연구보고서 내용에서 흥미롭게도 방글라데시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이유를 바로 물질적 풍요에서 비롯된 정신의 빈곤이라고 분석해놓은 그걸 읽으며 나는 우울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와 내가 타고 다니는 아반떼도 모두 장모의 허리끈에서 풀려 나왔다. 장모는 내게 투자한 만큼의 대우, 즉 처가에 끔찍하게 군다거나 아롱다롱 재롱을 떠는 이쁜 사위 노릇을 반대급부로 바라는 듯 했지만 나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었다.

쥐뿔도 없이 장가든 주제에 눈치가 발바닥이라 저 모양인지, 아니면 모르쇠 하고 낯짝에 철판을러지는 아내의 뱃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는지 얼마 안가서 숙지고 말았다.

퇴근후 특별히 갈 데도 없는 나로선 한창 '아빠' 소리가 익어가는 은지의 혀 짧은 발음처럼 듣기좋은 소리가 없었다. 어제 일만 해도 그렇다. 장모는 내가 무슨 못할 말을 했다고 그렇게 파르르성질을 돋우면서 가버렸는지, 나는 맘속으로 그 엄마에 그 딸이지 하고 흉을 봤었다. 현관에서 내품에 와락 안겨드는 은지 뺨에다 뽀뽀를 하곤 언제나처럼 물었다.

"우리 은지, 오늘 뭐 먹었어?"

"압빱빱빠, 꽁, 꽁~"

"에이, 또 꽁 먹었구나. 우리 은지 할머니한테 맛있는 것 만들어 주세요, 그러지 왜"나는 볼멘 소리로 은지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봤다. 도날드가 그려진 플라스틱 그릇엔 은지 말마따나 먹다 남긴 달걀이 담겨 있었다. 장모는 내 눈치를 보며 하루동안 은지가 먹은 것을 주워섬겼다.

"우유를 240밀리 타서 세 번이나 먹었네. 점심땐 미역국에 밥을 말아줬더니 얼마나 잘먹는지, 과자에, 삶은 달걀에, 쑥쑥 크지 않아서 그렇지 얘가 어디 보통 식성인가 원"

짜증이 치미는 걸 꾹 참았다. 장모나 아내가 차리는 식탁은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은 메뉴만 등장하는지, 색다른 것은 고사하고 허구헌날 끓여대는 미역국 하나라도 제대로 맛을 내지 못했다. 솜씨라고도 말할 수 없는, 형편없는 음식 솜씨를 가진 아내. 그건 장모도 마찬가지였다. 삼인방 중에서 그래도 처형은 좀 나은 편이었고 둘은 국화빵이어서 나로선 식탁에 앉는 일이 괴롭기 그지없었다.

"은지 맨날 똑같은 것만 먹여서, 저러다 편식쟁이 될까 신경 쓰여요. 다른 집에선 저만할 때 전복도 사서 먹이고 싱싱한 재료들 사다가 요것조것 다져서 부침개도 해먹이고 그런다던데…"나는 건성으로 해보는 말인 척 장모에게 운을 뗐다. 아이가 거실 바닥에 엎지른 새우깡을 줍느라평퍼짐한 엉덩이를 밀고 다니는 장모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내가 자네집 식몬가? 그것부터 대답해 보게"

"제 말은 그게 아니고…"

"듣자듣자 하니 이젠 못하는 말이 없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애 뭐 먹이는 것까지 고해 바쳐야하는 나는 어디 이 짓이 좋아서 하는 줄 아는가?"

"고생하시는 줄 저도 알지만…"

"그만하게, 내 귀에다 아예 못을 치고 살든지 해야지 이건 죽도록 외손녀 키워, 사위 간섭에 진이빠져, 무슨 할 짓인가. 내일부턴 내가 자네 집에 발걸음도 안할테니 요리사 불러다가 은지 맛있는것 실컷 해 먹이도록 하게"

그러면서 아주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일별하곤 장모는 가버렸다. 퇴근한 아내가 그 사실을알고 한바탕 나를 볶아 세우는 바람에 저녁이고 뭐고 쫄쫄 굶은 채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었다.금색 하트 모양의 프레임 속에서 은지는 웃을락말락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수리에 치켜서 묶은 꽁지머리가 샐쭉 삐질 듯이 옆으로 누운 걸로 보아 돌이 되기 전의 사진인 것 같았다. 부신 햇볕 속에서인지 차안에 떠도는 미세한 공기에 흐름까지 감지가 될 듯하다.은지의 사진에 내려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닦아내며 나는 놀이방 전화번호를 알아오지않은 것을 후회했다. 울다 지쳐서 어느 구석자리에 웅크려 누운 건 아닐까, 눈물 콧물이 범벅이되어 울면서도 애처롭게 내 눈빛을 놓치지 않으려던 은지를 생각하자 나는 이 모든 것이 아내의탓인 것 같아 새삼스럽게 적의가 솟아올랐다.

며칠 전에만 해도 그랬다. 먼저 퇴근해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회식이 있으니 저녁 먹고 은지 재우란 소리였다. 환절기엔 가볍게나마 감기를 앓고 넘어가던 은지 이마에 그날 따라 약간의 미열도 있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서 전화에다 대고 소릴 질렀다."야, 밥도 없는데 뭘로 저녁 먹으란 말이야. 은지 열도 나는데 빨리 못 들어오겠어?""아무거나 있는 대로 먹으면 되지 뭘 화를 내고 난리야. 은진 냉장고에 넣어둔 부루펜 5㏄만 먹여서 재워"

아내는 선선히 그러마 하지 않는 내게 되려 화가 난 눈치였다. 은지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나를 말똥하게 쳐다보고 있었고 집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너, 오늘 회식하고 왔다간 집에 못 들어올 줄 알아"

"기가 막혀. 이젠 협박도 해? 회식도 엄연히 업무의 연장이야. 그따위 말도 안돼는 소리로 나를옭아매려니까 좁쌀영감이란 소리나 듣지"

아내는 눈도 꿈쩍 않고 살살 약까지 올리더니 결국 자정이 넘어서 들어왔다. 벼르고 벼르며 아내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사춘기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한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짙은 회의가 생겼다.

중학교 때부터 결혼한 누나네에 얹혀 살았던 내가 놓치지 않은 하나의 꿈이 있었다면 그것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토실토실 귀여워야 했으며 아내는 요리며집치장도 남부럽지 않게 해내는 솜씨꾼이어야 했다. 꿈이 있으니까 당연하게도 나는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때 나를 사로잡았던 풍경, 내머릿속에 행복한 가정의 모범 답안으로 작성되어 있는 친구네 집을 아직도 난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커다랗고 노란 해바라기가 아플리케된 앞치마를 입고 친구의 어머니는 주방에서 콧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친구 어머니의 콧노래는 마치 도깨비 방망이 같았다. 뚝딱 김밥과 떡볶이가 나오고, 뚝딱오징어부침개가 나왔다. 나는 거의 홀릴 지경이었다. 그날 내 황홀의 절정은 친구의 아버지를 보면서였다. 그가 사온 통닭을 뜯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도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자식을 내팽개친 채 어디로 떠돌고 있는지도 모를 내 아버지가 아닌, 여유 있게 웃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저사람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결혼을 하면서 내겐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갖추어지는 듯 했다. 번듯한 아파트에, 자가용에 능력있는 여자까지, 덤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봐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은지가 생겼다. 너무 수월하게 이루어버린 것일까. 차곡차곡 안으로 다져가며, 틈이 생기면 메우기도 하면서 채워넣은 알맹이가 아니라서 그런가. 그럴듯하게 갖추어진 안에서 곪을 대로 곪은 내 꿈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자정이 되든 새벽이 되든 기어코 아내에게 밥을 짓게 해서 저녁을 먹으리라, 반찬이 없어 물로말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내 기어코…. 멀어져버린 꿈과 구겨진 자존심에 스스로 뒤채이고 있는데아내가 돌아왔다. 후닥닥 문을 열어 주곤 거실에 버티고 섰는데 아내가 비닐봉투를 흔들면서 감겨들었다.

"자기야, 나 오늘 돌솥밥 먹었는데 자기 그거 좋아하는 줄 아니까, 쬐끔 미안해서, 이것 봐, 명란사 왔다. 명란조친가 뭔가 그거 한 번 배워 보려구"

"잘한다, 술이나 처먹고 다니고"

나는 다짜고짜 비닐 봉투를 낚아채어 던져버렸다.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쩌면 저렇게 이중적일까. 술 취한 것을 빙자해 나를놀려먹는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굴었다. 집안에만 들어서면 지레 화를 내고 난리를 쳐 나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그녀에게 저런 이상한 술버릇이 생긴 것도 제법 되었다.

아내는 술만 취했다 하면 지나치게 다정해지고 눈물이 많아지면서 나를 감고 돌았다. 내가 웬만큼 폭언을 퍼붓고 거칠게 굴어도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다소곳이 은지를 보듬고 있거나 나를 쳐다보며 실실 웃기만 했다.

그녀의 그런 술버릇을 알기에 나는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으로 쌓이면 일부러 아내에게 술을 먹자고 꼬드겼다. 좀 야비한 방법이긴 하지만 내가 아내를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런 대로 참아줄 수있었던 데는 그런 웃지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그렇긴 해도 아내의 술버릇에 기대어 위로 받기엔내 생활이 너무 찌들린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다섯 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해가 지고 있다. 오늘따라 일몰이 더 빠른 것 같아 연신 시계를들여다보는데 호병계에서 잔무를 처리하던 경숙씨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갖다주었다."한 주사님, 무슨 걱정 있어요?"

"아무, 것도. 경숙 씬 퇴근 안해요? 아기 있잖아요"

"저 시어른 모시고 살잖아요. 아이 떼어놓고 출근할 땐 대역죄인이 되었다가 퇴근하면 사면된 기분, 비굴해지지 않으려고 겉으론 태연하게 굴어도 맘속으론 너무 힘들어서, 어떨 땐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니깐요"경숙씨의 아이와 은지가 또래일 것 같아 말을 꺼냈던 나는 의외의 그녀 대답에잠자코 커피만 마셨다. 누가 봐도 현모양처형인 경숙씨마저 집에 들어가는 것이 괴롭다는 소리가나올 줄은 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놀이방에 은지를 데리러 가기로 한 여섯시가 가까워오자 나는 안절부절 마음이 옥죄여 견딜 수가없었다. 내가 눈앞에서 사라진 걸 알고 나서 울음을 뚝 그치고 영악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하루를 잘 보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자꾸만 애처롭게 나를 쳐다보던 은지의 눈빛만 떠올렸다.죽이고 처가에다 은지를 두고 올 것을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따위의 추측으로 마음이 가벼워질 리도 없고 어찌됐든 은지를 데려와야 하지 않는가. 바깥은 어둑해져서 상점 간판에 더러 불이 들어와 있기도 했다. 나비잠 놀이방의 노랑나비와종이 꽃밭도 어둠속에 희미해졌다. 나는 더는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놀이방엔 보육사도 은지도 보이지 않았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다. 여태도 울며 보채는 은지를 업고 달래려 나갔는지도 몰랐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서 찾아볼까 하다가 시계를 보았다. 약속한 여섯 시가 다 되어가니 곧 돌아올 것이다.

아이들은 몇명 남지 않았다. 부모들이 늦어지는 아이들만 뒤처진 것 같았다. 얼른 눈에 띄지 않는구석자리 퍼즐 매트 위에 베개도 없이 웅크리고 누운 아이가 보였다. 나는 은지가 아닐까 가슴이덜컥 내려앉아 급히 그쪽으로 가보았다.

은지 또래나 되었을까, 하얗고 마른 얼굴이 퍽이나 예민하게 생긴 계집아이였다. 울다가 이제 막잠든 듯 아직도 선울음을 삼키는 아이의 얼굴은 콧물과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나비잠을 재운다더니. 갓난아이처럼 두 팔을 머리위로 올린 채 행복하게 잠들 수 있도록 모성애로 보살핀다더니…. 나는 호호 웃던 보육사의 낯간지러운 말투가 깡그리 거짓말처럼 여겨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목각을 갖고 놀고 있는 사내녀석 옆에 밀쳐진 이불이 보였다. 후드득거리며 선울음을 삼키는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바깥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마음이 착잡해졌다. 아내가 무슨 말로 사과를 하거나 장모가 어떻게 설득하려 해도 요지부동일것, 내일 아침에도 보아란듯이 아이를 데려와 여기에다 맡기고 출근할 것, 혼자 독하게 사려먹고정해놓은 계획이 슬그머니 흔들릴 것만 같았다.

"어머, 은지 갔는데, 모르셨어요?"

"가다뇨 어딜?"

나는 엉겁결에 담배를 발 밑에 뭉개며 보육사의 등을 살폈다. 그녀는 커다란 쟁반에다 쿠키와 요구르트를 담아서 들고 있었다.

"아까 오후에 외할머니란 분이 오셨던데요? 아이, 은지가 울음이 어찌나 질기던지, 좀 울긴 했지만 괜찮을 거예요"

"누군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아이를 내보냅니까"

"어멈, 보면 몰라요? 둘이 껴안고 우는데 꼭 이산가족 상봉한 것 같더라니까요"나는 휘적휘적 걸어서 주차장으로 갔다.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면서 허전하기도 하고 한편으론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랬을 것이다.

장모가, 콧물과 눈물이 범벅된 채 울고 있는 은지를 보았다면 울고도 남았을 것이다. 매트위에 이불도 덮지 않고 웅크리고 누웠던 아이를 보면서 나도 은지 생각에 목이 메이질 않았던가. 은지를사랑하면서도 결국 내 입장에 급급해 아이를 힘들게 했다는 자책이 생겨났다. 사랑이든, 배려든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는 그 본질적인 의미마저도 뒤틀려버릴 수 있음을 나는 오늘 은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꺼두었던 핸드폰을 켜자마자 기다렸단 듯이 전화가 왔다. 아내였다.

"어딨는 거야, 전화도 꺼두고. 집에 빨리 가봐"

"지금 가려던 중이야. 은지…장모님이 데려가셨다며? 거기 있는줄 어떻게 알고""왜 몰라? 당신 그렇게 은지 데리고 휭 나가고 나서 아버지가 뒤따라가셨대. 놀이방 확인하고 집에 와서 엄마 설득하는데 세시간 걸렸다며, 은지 데려왔으니 걱정말라구 전화 하셨더라. 나 오늘야근이니까 그리 알어"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아내를, 오랜만에 이름을 불러보았다.

"정화야, 아침에 너 따귀 때린거 미안해"

"뭘, 너도 나한테 맞았잖아. 그래도 우린 앞으로 그런 짓은 안하는게 좋겠더라. 그렇지 좁쌀영감님?"

잠시 가만히 있던 아내의 목소리가 상큼하게 한 옥타브 높아지면서 제법 재잘거린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그 듣기 싫은 좁쌀영감이란 소리도 나를 이해한다는 아내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졌다.한때는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꿈이었다 해도 집착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딱딱하게 굳어버리게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나마 깨닫는다. 오랫동안 내 속에 묵혀두어서 쓸모없이 단단하기만 한그 꿈을 끄집어내어 나는 이제 내 체온으로 매만지고 살 붙이려 한다. 집에 가면 맨 먼저 바구니에 가득한 짝짝이 양말들을 가지런히 접어서 서랍에 넣고, 발 디딜 데가 없어 피해 다니던 은지의 장난감과 책을 정리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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