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는 주부들의 소망

입력 1998-12-30 14:00:00

이제 이틀 달랑 남은 무인년이 가고 나면 기묘년의 새날이 밝는다.

부도·퇴출·실업·노숙자·취업난이라는 5대 용어를 지겹게 들어야했던 무인년이 가고 기묘년새날이 밝으면 우리네 평범한 세상살이도 어두운 장막을 걷고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을까. 기묘년을 맞는 여성·가정들의 신년맞이 소망을 설계해본다.

〈편집자 주〉

9년전 남편과 사별, 자동차부품회사에 다니며 두 자녀와 함께 살던 모자가정 임미숙씨(37세·대구시 서구 평리동)는 경제위기 이후 일감이 줄어들어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졸지에 실직여성가장이 됐던 지난 한해가 진저리난다.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남편이 먼저 간 후 식당일도 하고, 행주도 접고, 보자기도 접다가 자동차부품공장에 취직이 된 지난 3년은 참 행복했어요. 보라와 정식이를 공부시키고, 조금씩 저축도하며 외롭지만 따뜻하게 살았는데 졸지에 직장이 날아갔어요"

퇴직금으로 살다가 3개월간 공공근로를 다녔던 임씨는 또다시 거친 세파를 빈몸으로 맞섰으나 그렇게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인동초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기묘년을 맞는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따기위해 대구여성회관에 등록하고, 오후에는 가게를 하는 친구의 어린자녀 두명을 봐준다.이렇게 버는 15만원으로 한달을 버틴다. "내년에는 일자리나 났으면 좋으련만…"IMF가 터지면서 옆도 뒤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던 임씨는 일자리에 대한 꿈을 꾸며 자신과 자녀들의 건강을 무엇보다 소망한다.

50대 부부 김시준·노병희씨(대구시 수성구 범물동)는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99년에는주부들이 금전출납부도 꼭 쓰고, 의식도 달라지기를 소망한다. 돌이켜보면 IMF라지만 중상층의의식은 별로 바뀐 것 같지않아 안타깝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대만원을 이루는 찜질방이며, 늘어난 이자수입으로 'IMF야 반갑다'며 펑펑돈을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려운 이들은 먹고 살기위해 코에 단내가 나는데 지나치게 소비문화에 매달리며 혼사도 돈으로 재는 풍토가 여전하다.

지난해 아들 종엽씨(28세·군의관)를 장가보내며 돈과 결혼을 맞바꾸는 풍조를 거부하여 이웃의귀감이 된 노씨는 "가정을 바로 세워야 건강하고 튼튼한 사회가 만들어진다"며 내년에는 마음이통하는 사회, 가정이 바로서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정을 나누고 마음이 통하는데서부터 우리의 미래에 작은 희망이 싹트고,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자세에서 희망찬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느냐고 믿는 노씨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가계부나 하다못해 금전출납부라도 꼭 썼으면 좋겠어요. 꼼꼼하게 챙기다보면 애매한 돈 문제로 다투는 일이줄어든다"고 들려준다.

결혼 이후 지금까지 계속 가계부를 쓰면서 가정을 지켜온 노씨는 딸 수빈씨(26세)도 곧 남의 집기둥이 될 며느리가 될 입장인만큼 시집가면 그쪽 어른들 편한대로 뜻을 따르며 살기를 희망한다. 들어오는 사람이 잘들어와야 집안이 화평하고, 화평한 집안에서 5천년을 이어온 우리네 문화를 새롭게 꽃피울 수 있다고 노씨는 굳게 믿고 있다.

정영애씨(대구시 남구 대명동·양친회 전무)는 "지난해에는 돈을 맡기는 사람보다 돈을 빌려서뭘 해보려는 사람이 대폭 줄어들 정도로 투자나 새로운 사업 의욕이 땅에 떨어졌고, 젊은이들은용기를 잃어버렸던 한해가 아니었는가"라고 돌이키고, 새해에는 돈보다 기(氣)를 되찾아 계획대로살 수 있는 안정된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거품경제가 빠지면서 경제기반이 무너진 중산층이 무너진다지만 가족애로 뭉쳐져있으면 문제가없다"고 정씨는 말한다.

99년은 가족끼리 인간적 유대관계를 다지고, 직장 동료들이나 칠성시장 이웃들이 너나없이 기(氣)를 듬뿍 받아서 털고 일어서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꿈을 누구인들 꾸지 않으리.〈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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