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난 대쪽 부르면 간다

입력 1998-12-25 14:54:00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최근 자주 하는 말이다. 동생 회성(會晟)씨가 구속된데다 검찰이 총풍과 세풍사건을 이유로 운전기사와 총재실 여직원까지 소환하려는 상황에서 이총재는 이런굳은 결의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총재는 최근의 정국상황이 '이회창 죽이기'를 기본흐름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현실이 이총재의 트레이드 마크인 '오기'를 발동시키고 있다. 하지만 검찰권에 대해 적절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에서 "검찰에서 부르면 가고 잡아 넣으면 들어간다"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야당파괴와 이회창 죽이기라며 결사항전을 외치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세다. 일방통행식의 비타협 전략을 택하려 해도 거당적인 협조가 불가능한데다 그 다음 전략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대책없이 버티기보다는 오히려 역으로 여권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있다는 분석도 작용하고 있다. 사건 초기와 달리 총풍이든 세풍이든 끝까지 가더라도 더이상 손해볼 게 없다는 일종의 자신감도 깔려 있다.

이총재는 "총풍과 세풍사건의 불법성과 부당성을 국회차원에서도 철저하게 추궁하라"는 지시도내렸다. 정면으로 맞서면서 오히려 수세를 역공세로 맞받아 치겠다는 전략이다. 현정권 핵심의 대북커넥션을 쟁점화시킨 총풍사건의 예에서처럼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도하고 있다.

최근 이총재의 사조직인 부국증권팀을 소환조사하겠다는 검찰에 대해 조사에 응하라는 방침을 정한 것도 정면돌파 전략의 일환이다. 털어도 나올 먼지가 없다는 자신감은 물론 오히려 이회창 죽이기의 허구성을 입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총재는 아직 비주류의 비협조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는 당내를 향해서는 맨투맨작전을 통해양해와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당직 인선을 둘러싼 대구.경북의 반발도 의원들을 일일이 접촉, 진의가 왜곡됐음을 전하며 설득,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총재의 이런 언행을 두고 당내에서는 "이총재가 많이 노련해졌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대쪽이라는 딱딱함에다 부드러움을 가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총재가 갖고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여권의 공세는 조만간 정점에 이를 정도로 날이 갈수록 더 강화될 것이 뻔한데다 당내적으로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비주류의대대적 공세가 해가 바뀌면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때문에 아직은 이총재가 안팎의 양면공격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있어 보인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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