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한국에서 유행한 가방끈에 휴대폰 꽂이를 단 가방이 요즘 밀라노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요. 디자인 등록을 해뒀더라면 떼돈을 벌었을텐데…"
대구출신의 밀라노 유학생 이형철씨는 "이탈리아는 끊임없는 모방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왔다"고 말했다. 예전엔 파리 등 유럽에서 모방했고 요즘엔 한국·일본 등지의 동양적 문양을모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밀라노는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유학생들을 받아들여 교육한다. 그러나 이 유학생들도 밀라노에 자국 문화를 전수하고 간다. 밀라노는 이 유학생들을 통해 각국의 문화적 전통을 앉아서 흡수,이탈리아 디자인으로 발전시켜 재수출하는 것이다. 밀라노의 모 유명 브랜드는 최근 일본 전통문양으로 직물을 디자인, 일본으로부터 인기를 끌고있다.
그렇다면 밀라노는 어떻게 디자이너들을 양성하고 있을까. 밀라노에 있는 패션디자인 관련 학교는 에우로뻬오(유럽디자인학교)·세꼴리·마란고니·도무스 아카데미 등이며 브레라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도 디자인 교육을 시키고 있다. 이밖에 실크산지인 꼬모의 꼬모섬유학교도 직물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이들 디자인 학교의 교육은 이론과 실기교육이 병행되나 철저히 실무중심이다. 각 학교의 성격은조금씩 다르다. 세꼴리의 경우 패턴 교육위주(모델리스트 양성)이며 마란고니는 디자인 중심(스타일리스트 양성). 에우로뻬오는 두 학교의 중간성격을 띠고있다. 도무스는 우리의 대학에 가까운시스템.
이들 학교의 교육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철저한 산학협동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닮았다. 밀라노의 한국 유학생들을 통해 밀라노 디자인 관련학교들의 실태와 밀라노 디자인 산업을 알아보았다.
"꼬모섬유학교의 직기는 고물이에요. 그러나 학생들이 고치고 또고쳐 직기를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직물업체에서도 직기의 10%는 세워두고 직물디자이너들의 직물디자인 실험용으로 내주고 있어요. 대구 직물업계도 직물디자이너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한양대 섬유공학과 출신으로동양폴리에스테르에 근무하다 에우로뻬로에 다니고 있는 오승준씨)
"교육보다는 일하는 환경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학교다닐 때 패션디자인 분야의 열등생이었던사람이 전공까지 바꿔 직물디자인 업체에 어렵게 들어간 뒤 일하면서 배워 아르마니 등에 납품할정도로 감각을 키우는 것을 봤습니다. 반면 우리 패션디자인 업체들의 경우 디자이너들이 일을할 수록 감각이 죽는데 반해 이탈리아인들은 일하면서 배웁니다"(대구출신으로 세꼴리를 졸업한뒤 마란고니에서 수학하고 있는 신명순씨)
"전문대학에 다녀 실기는 많이 익히고 왔습니다. 유학의 성공여부는 학교분위기에 얼마나 적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특히 이탈리아 학생들은 학교졸업에 신경쓰지 않아요. 학교에 다니다일자리가 생기면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합니다. 이들은 졸업장보다 누구밑에서 얼마나 일을 배웠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일하다 다시 학교에 편입학 하기도 합니다" (마란고니 2년생 노병진씨)
"한국 유학생 대부분이 대학 전공자입니다. 때문에 처음 입학해서는 디자인 그림을 아주 잘 그립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요. 반면 이탈리아 학생들은 그림을 제대로 못그려요. 그래도 개의치 않고 패션에 관해 토론하면서 밤새워 놀기만 합니다. 그러나 6개월에서 1년만 지나면 그들이 우리를 앞섭니다. 한국학생들은 디자인 하나만 하면 지치나 이탈리아 학생들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내놓고 새로 디자인 합니다" (에우로뻬오를 다니다 중퇴하고 쇼룸디자인 업체 로뗄라에 근무하고있는 이형철씨)
"학교와 업체를 연결하는 산학협동 프로젝팅 매니저, 마케팅 매니저 시스템을 배워야 합니다. 밀라노에선 업체가 학생들에게 공모전 형식의 프로젝트를 주고 교수와 회사 관계자가 함께 학생들을 지도합니다. 카메라 디자인을 공모했다면 다음해 반드시 학생들이 디자인한 카메라가 시장에나옵니다. 또 포장에 디자인한 사람의 이름을 새겨 자긍심을 키워줍니다. 학생들이 뛸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진정한 산학협동이 아닐까요"(에우로뻬오에 유학중인 박기현씨)
이들 유학생은 이탈리아 업체 뿐 아니라 한국업체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아울러 IMF상황하에서 자신들의 진로에 대해서도 고민이 적잖았다. 쇼룸디자인 업체에 근무하고있는 이형철씨의경우 그의 한달 급여는 고작 70만리라(50만원 남짓). 디자이너에게 주는 로열티를 챙겨도 1백50만리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경력의 이탈리아 디자이너는 고정 급여만 2백만리라를 넘는다. 이탈리아 업체들이 한국 디자이너를 이렇게 박대하는 이유는 몇년 경력이 쌓이면 대부분한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마란고니 유학생 신명순씨는 "일본 유학생의 경우 박대를 받아도참고 이탈리아에 정착, 후배들을 이끌어준다"며 정부의 지원책을 아쉬워했다.
또 한국 유학생들은 막상 학교를 졸업해도 한국업체의 취업이 쉽지않다. 지난해 에우로뻬오를 졸업한 26명의 한국유학생중 취업한 유학생은 2명에 불과했다. 대부분 대학졸업후 유학온 탓에 나이가 많아 한국업체 디자인실에 적응하기가 쉽지않다는 것. 마란고니 유학생 신씨는 "유학파 대우를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잡일까지도 할 용의가 있으나 받아주는데가 없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철저한 산학협동으로 인재를 최대한 활용하고 기회를 주는데 반해 우리는 스스로 공부한 우리 인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曺永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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