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사장서 식당주인 변신 윤석호씨

입력 1998-12-14 14:38:00

대구시 수성구에서 식당(산호숯불)을 하는 윤석호씨(45)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한때 잘 나가던 중소기업사장에서 앞치마를 두른 허름한 식당주인으로 바뀐 자신의 모습이부끄러워서가 아니다.

"나만 어려움을 겪는것도 아닌데…"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혹독한 IMF 경제체제 아래 힘든 나날을 보내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윤씨는 (주)우드월드라는 동종 업계에서 알아주는 탄탄한 중견기업체 사장이었다. 인도네시아 원목을 현지에서 반가공한 뒤 대구로 들여와 아파트용 창틀과 문틀을 만들어 주택업체들에게 공급했다. 80년대 후반 지역주택건설업 호황에 편승, (주)우드월드도 연간 매출액 60여억원을 올리며인도네시아 지사에 상근직원 10명을 둘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주택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며 납품대금으로 받은 어음들이 줄줄이 부도나고 부산보세창고에는 인도네시아 지사에서 보낸 반제품이 8톤 덤프트럭 20대분이나 쌓여있는데도 판로가끊겼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사채까지 끌어대며 버텨보려 했지만 원금 상환은 커녕 이자도 못갚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급기야 끼니마저 걱정할만큼 형편이 나빠지자 아내 김미자씨(43)는 쌀 살돈이라도 벌어야겠다며지난해 8평짜리 가게를 세내 바다장어와 낙지를 굽는 식당을 시작했다.

그래도 재기의 꿈을 못버려 생계를 아내에게 떠맡긴채 바깥을 나돌던 윤씨가 힘겨운 방황끝에 마음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본격적으로 식당일에 뛰어든 것은 지난 3월. 밤 12시에 문을 닫고 귀가해 저녁 먹고 잠자리에 누우면 새벽 2시30분. 잠이 부족한데다 손님이 많이 찾는 저녁시간에숯불 화로를 들고 식탁 사이를 오가다보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가볍다. 예전처럼 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가족 생계와 세 자녀를 공부시키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고 빚진 돈도 조금씩 갚아나갈 정도는 되기 때문이다.

"장사 비결요. 양념 맛을 좋게하고 맘껏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바다장어를 푸짐히 내는 것 뿐입니다. 손님이 다소 줄어 걱정이지만 앞으로 나아지겠지요"

윤씨는 "숯불이 꺼진 것처럼 보이지만 바람을 불어주면 다시 불길이 살아나는것처럼 IMF 관리체제가 끝나면 맨손으로라도 예전의 사업을 다시 시작하겠다"며 정성을 다해 화덕의 숯불을 피우고있다. 〈許容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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