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혼불 작가의 죽음

입력 1998-12-12 00:00:00

하나의 작품에 매달려 17년의 세월을 불태운 작가가 우리의 최명희(崔明姬) 말고 또 있을까.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혼불'이라는 조어(造語)가 이처럼 독자의 가슴 깊숙이 파고든 이유는 무엇일까.

만51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최명희는 72년 전북대국문과를 나와 고교교사생활을 9년간 했다.그는 평범한 교사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살면 뭣하는가"하고 자주 되뇌이다 80년에야 문단에선늦깎이로 볼 수밖에 없는 일간지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면서 기념비적 작품인 '혼불'을 쓰기 시작했다.

17년간 원고지 1만2천장분량을 밤12시부터 새벽시간 꼭두 집필해낸 것이다. 5부작 10권으로 출간되자 문학애호인들뿐만 아니라 각계의 독자들로부터 우리문학사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사실에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혼불'의 소재(素材)는 일제말(1930~1943) 민족적 암울기 전남 남원 대가집 며느리3대의 삶을 중심으로 한 것인데, 당시의 세시풍속.관혼상제.음식문화등을 한올한올 실을 뜨듯 정교한 언어로 엮어낸 것이다. 미국의 마거릿 미첼이 단 한권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남겨 미국현대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정신세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한다면 감히 痢 최명희의 '혼불'을 그런 수준이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1백만부 가까이 책이 팔려나갔다고해서 위대한 작품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구사하고조탁(彫琢)한 언어가 훗날 교과서적 의미를 가질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 아닐까. 작년7월 각계저명인사 70여명이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한 것도 그의업적에 빛을 더하는 것이었다.

광복전후사와 6.25전쟁을 배경으로 구상했던 작품을 쓰지 못하고 영면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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