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유한수(전경련전무)

입력 1998-12-11 14:55:00

지난 12월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 회담후 대기업 구조조정의 윤곽이 드러났다. 앞으로 기업들은 정부와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경영투명성을 높이고 부채비율을 축소하는등 노력을 해야한다.

청와대 회담을 계기로 우리나라 재벌들의 선단식 경영은 이제 막을 내렸다. 그러므로 종래 재벌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던 모든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그런 규제중에는 지주회사의 설립, 은행의 지배주주, 공기업인수, 회사채및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등이 있다.이번의 대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너무 기업의 재무구조에만 집착해서 산업정책적인 고려가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인 자동차, 조선, 반도체같은 업종은 초기에막대한 투자가 들어가 3~5년간은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업종이다.

그런데 앞으로 적자나는 기업은 경영책임을 묻고 워크아웃에 집어넣겠다면 이제 이같은 전략적투자는 하기 어렵다. 남들은 첨단산업이다 미래산업이다 해서 과감한 투자를 하는데 우리는 당장의 적자 때문에 종래 해오던 산업에 집착할 때 국제경쟁력은 어찌될 것인가. 이런점에서 앞으로21세기에 우리는 어떤 산업에 투자하고 무얼해서 먹고살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정부는 앞으로 대기업 계열사들은 상호 독립경영을 하면서 느슨한 연합형태로 관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GE나 ABB등 대기업의 경영형태를 예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정책당국자가 기업경영을 잘 몰라서 하는말이다. 어느나라의 대기업치고 느슨하게 관리하는 그룹이 있단 말인가.

GE의 잭 웰치 회장은 거의 황제처럼 군림하면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계열기업 관리도 결코 느슨하지 않다. 느슨한 것은 우리 정책당국자의 시각이다. ABB의 경우는 일종의 연체동물같은 조직이다. 이런점에서 느슨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21만 종업원을 40명단위로 5천개의단위기업으로 쪼개놓은 사례는 이세상에 ABB말고는 없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조직을 본받으라는 것은 너무 심한 말이다.

우리 정책당국은 삼성이나 현대를 5천개로 쪼개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것인지 궁금하다.ABB의 5천개 분사는 결코 느슨하게 관리되지 않는다. 일단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5~10개 기업이한개의 그룹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

정책당국이 경영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옳다.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말하는 것도 옳다. 금융감독권을 가진 당국이 당연히 할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업경영을 GE처럼 하라거나 ABB처럼 하라는 것은 일종의 월권이다. 금융당국은 기업경영의 전문가 집단이 아니다. 훈수를 두자면 전문분야와 관련해서 두어야 한다.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완성된 것으로 보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부양이 그리 쉽게 될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무엇보다 재정적자가 자꾸 늘어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풀 돈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정부는 돈 안드는 경기부양을 생각하는 듯하다. 돈 안드는 경기부양이란 각종 규제를 완화해서 민간투자가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도심지 재개발규제를 풀고 아파트의재건축 기간을 단축해주면 건설경기가 살아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좋으나 경기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아무래도 제한적인 것이다. 게다가 개발이익은 대도시 주민들에게만 돌아가는 정책이라 지역간 계층간 불공평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경기부양을 위해선 투자와 소비가 늘어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계열사 통폐합, 자산매각, 부채비율 축소 등으로 당분간 투자여력이 없다. 또 구조조정의 와중에 실업자가 늘어 소비심리도 얼어붙을 것이다.

따라서 내년 상반기중에는 소비와 투자가 되살아나기 어려워 경기부양이 제대로 될런지 걱정된다. 이왕 경기부양을 하기로 했다면 좀 더 과감한 정책이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인플레정책을 써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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