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다시 가본 수해현장

입력 1998-12-07 14:09:00

■농촌-상주

...물너울이 상주를 훑어버린지 벌써 넉달. 다시 이안천에 섰다. 12명의 목숨, 4백90만평의 논밭을휩쓸어 가버린 참혹했던 지난 8월. 그사이 얼마나 회복해 가고 있을까? 묻혀 버렸던 마을은 되살려졌을까, 이재민들은 집이나 찾아 들었을까?

상주 북부를 꿰뚫어 흐르는 40여km 길이 이안천의 웃머리인 외서면 우산리 무들마을부터 찾았다. 마을 전체가 흙더미에 토장돼 버리고도 길이 끊겨 수해 열흘을 지나기까지 접근이 안됐던 동네. 억지 같이 지프차를 몰아 찾아 갔지만, 동네에선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취재팀을 맞은 것이라곤 여기저기 황량하게 나뒹구는 경운기 조각, 부서진 가옥 잔해, 마구잡이휘어져 드러누운 동네 진입로 시멘트 포장, 옷가지들 뿐... 허전한 집터는 사람 대신 새들이 지키고 있었다.

차를 돌려 한참을 되내려 와 새들마을을 지나다 집 짓는 사람들을 만났다. "혹시 수해 때문에 새로 짓는 것입니까?" 집주인은 마흔살의 강운태(姜雲太)씨. 무들에서 수해를 입어 아랫마을 학교에수용돼 45일간 살다가 상주에 방을 세얻어 임시로 가족을 보내 놓고 아예 마을을 옮겨 살 준비를하고 있다고 했다.

"무들에는 다섯 가구가 살았으나 두 가구가 새들로 옮겨 집을 짓고, 나머지는 이마을 저마을로영영 흩어져 갔습니다. 무들은 이제 지도에서 사라진 마을이 됐습니다" 강씨는 땅 66평을 사 방두개짜리 블록 집을 짓는 중이었다.

여기서 20여리 떨어진 이안천 하류 공검면 중소2리까지의 풍경도 수해 직후와 별로 달라진게 없었다. 끊겼던 아스팔트 길은 여전히 흙으로 임시 땜질돼 있고, 뜯겨져 나간 산이나 도랑 둑도 그대로였다. 자갈을 덮어쓴 논밭도 많이 남아 있었다.

"다음달 쯤 다시 오면 많이 복구돼 있을 겁니다. 부서진 길이나 다리가 지금은 그냥 있지만 이제복구를 위한 설계가 끝나 이달 중에 모든 공사가 발주됩니다. 하천은 내년 봄까지, 교량은 내년말까지 작업을 끝낼 계획입니다".

동행한 시청 김경오(金庚五) 건설과장은 특히 이안천은 40∼50m 너비를 70∼80m로 대폭 넓혀 50년 빈도의 큰 비도 견딜 수 있게 완전히 개량복구토록 설계됐다고 했다.

김과장에 따르면 논밭은 내년 모내기 전까지 모두 복구하되, 피해가 큰 상당수 면적은 아예 경지정리까지 겸해 일괄 정지키로 했다. 아직도 많이 눈에 띄는 폐허화된 논밭 자리는 그것 때문에작업이 미뤄진 지구라는 것. 그의 말을 증언하듯 들판 여기저기서 중장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있었다. 매일 움직이는 중장비가 상주 전역에 걸쳐 1천여대에 이른다고도 했다.주택 복구는 다른 분야 보다 빨라 이안천 하류의 중소2리는 수해 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있었다. 전체 47채 중 물에 잠겼던 기와집 등 20채를 헐어내고 깔끔한 양옥(16채)으로 다시 세운것이었다. 수해에 놀란 터라 모두가 집터를 돋우고도 기둥을 높이 세운 2층 형태로 건축해 놓고있었다.

넉달만의 취재팀을 반갑게 맞은 이장 안태호(安泰浩.52)씨는 그러나 수심이 더 깊어져 있었다. "6백만원 보조, 1천4백만원 융자 등을 믿고 3천만원씩이나 들여 집을 짓긴 지었지만, 이제 건축비외상 갚을 일에 모두들 걱정입니다. 들이 모두 묻혀 버렸으니 매년 1천5백 가마 정도 하던 동네벼 매상을 올해는 한가마도 못했습니다. 수해 때 받은 구호양곡으로 살아 왔으나 그것도 이제 다떨어졌습니다. 다시 벼를 거두는 내년 가을까지 살길이 막막해 내일은 동민들의 공공근로 참가가능성이라도 알아보려 시청에 가 볼 참입니다".

〈상주.朴鍾奉, 朴東植기자〉

■공단-포항

...지난 추석을 이틀 앞두고 구멍난 하늘이 포항에 쏟아 부은 비는 무려 6백10mm. 연이틀 동안폭발하는 화공약품 불기둥이 전쟁터 같이 치솟았고, 시가지.공단 가릴 것 없이 땅이라는 땅은 모두 물바다. 그리고 그 다음에 드러난 포항 모습은 폐허였다.

그때 가동을 멈췄던 포항공단 '성원제강'이 다시 기계를 돌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지난 1일이었다. 뒤편 산사태로 가열로 등 주요 설비가 모두 파손돼 단일업체로는 최대인 50억원의 피해를 입었던 것.

장기락 관리차장(37)은 '흙더미가 덮치는 순간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했지만 이 회사 직원63명은 철야 복구작업을 계속, 두달 동안 피땀을 쏟았다. 조업 손실까지 합치면 이 회사가 '예니'때문에 입은 피해는 무려 1백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포항공단에서는 1백60개 입주 업체 중 31개사가 침수.산사태.제품유실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 시설 피해만 1백19억원, 조업 피해까지 합하면 3백억원. 단일 천재지변으로는 포항이 생긴 이래 최대 규모였다.

인접한 시가지나 농촌도 마찬가지. 23명이 숨졌고 1만가구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 가뜩이나어려워진 살림에 수백만∼수천만원을 들여 집을 수리한 시민들, 물에 잠긴 50만원짜리 옷을 단돈5백원에 팔아야 했던 상인들, 타작도 못한채 불질러 버린 나락 논...

대잠 못둑 붕괴사고 피해자들은 시와 농조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폭우에 휩쓸려 간 남편시신을 찾아 지금까지 형산강 곳곳을 헤매는 유족도 있다. 포항 사람들의 한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포항.朴靖出기자〉

■시가지-구미

...인접 제방 붕괴로 지난 8월16일 시가지 전체가 몽땅 물에 잠겨 버렸던 구미시 광평동. 세월이약이라고, 이제 적어도 겉보기엔 멀쩡한 모습을 회복했다. 그러나 속까지 그럴까?1통.5통 주민들은 또다른 일로 '제2의 수해'를 당하고 있었다. 방을 세놓아 그 수입에 크게 의지했던 터였으나 수해 이후 세입자가 절반 가량 줄어 썰렁한 마을이 돼 버린 것. 물난리 때문에 마을이 폐허로 변하자 세입자들은 너도나도 보따리를 쌌고, 그 결과 어려운 살림에도 옹기종기 머리 맞대고 소담스레 살던 모습도 사라졌다.

그러면서 무너져 내린 집 13채가 복구엔 엄두도 못낸채 마을 중간중간에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시에서는 집 지어라고 4백만원을 융자해 준다지만 새집 짓기에는 어림도 없지. 그래도 세 들어올 사람만 있다면야 빚이라도 내 보겠지만 어디 세입자가 있어야지..." 조현호씨(52)는 애꿎은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옆집에 살던 이우태씨는 살던 집이 물 속으로 사라진 뒤 남의 집 한켠을 얻어 살고 있었다.

물난리를 당한 3백70여 가구 주민들은 사고 당시 대책위를 구성, 피해 보상을 요구했지만 허사였다. 드디어 소송대책위를 발족, 한달 전 힘겹고 지리한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원인 규명, 물적.정신적 피해 및 영업피해 22억원 배상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

"법 좋아하는 주민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도 책임질 곳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수단에 호소해 보는 것이지요" 송성재 위원장(43)은 소송은 했지만 관계 당사자들 끼리 마음을 열고협의해 보자는 것이 주민들의 속마음이라고 했다.

〈구미.李弘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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