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영남인들에 당부함

입력 1998-12-04 00:00:00

또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IMF한파로 사람들의 마음은 얼어붙을대로 얼어붙었지만 세월은 무심하게 잘 흘러갔다. 그런데 무슨 하늘의 심술일까.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이라 한다. 노숙자들의 행렬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날마저 춥다니, 앞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데, 개혁의 행보는 황소걸음이다.

기득권자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시점에서 우리 나라의 개혁은 하면 더좋고 못하면 할수 없는 것이 아니다. 개혁을 못하면 힘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힘있는 사람들도다 죽는다. 사회 전체가 썩어 문드러졌기 때문에 이대로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이것은 고상한 윤리의 실천에 관계된 문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한 사회의 국제 경쟁력에 관계된 문제이다.21세기에 세계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어갈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못한 사회는 가차없이 도태된다.

21세기는 강력한 정신적 동인에 의해 세계가 재편되는 시대이다. 21세기의 경쟁력이란 20세기처럼 물질적 바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곳곳에서 누수가 발생하고 썩고 병들어 사회 전체가 가라앉게 되어 있다. 게다가 문을 닫고 살아갈 방법도 없다. 원하든원치 않든 우리는 이미 '세계화'라는 배 위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21세기에는 세계전체가 거대한링크의 조직망에 포섭될 것이다.

만일 '세계화'호가 흔들린다면 세계는 요나를 찾아내어 배 밖으로 집어던질 것이다. 우리가 그 요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 사회의 합리화를 막고 있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진정한 의미의 근대성이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물질적 풍요'만이 근대화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우리는 개발이데올로기가 가진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아가고 있다. 물질적으로 잘먹고 잘사는 것으로는 한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합리성을 획득할 수 없다. 물질적 생산량의 증가로 한 사회의 근원적 비합리성이 교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한 사회가근원적 층위에서 전근대적 몽매를 탈출하는 것이다.

즉, 삶에 관해 주체적 태도를 확립한 개인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삶의 기획은 그러한 개인들에 의하여 세워진다. 근대를 해체하더라도 근대가 착근한 이후에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 이후에야 전근대로 돌아가든지 탈근대로 진입하든지 하게된다. 그렇지 않으면 허공에서 추는 춤이 되어 버린다. 생각해 보라.

내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면서 남이 하는대로 따라 하는 백성을 데리고 어떻게 저 세련될대로 세련된 서구의 벽을 넘을 수 있겠는가.

영남인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한다. 30여년동안 물질적, 정신적 기득권을 누려온 영남인들이 먼저지역감정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버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전에 하던대로 해가지고는 우리에게 아무 희망도 없다. 사회 전체의 개혁을 요구하기 전에 나부터 개혁되지 않으면 안된다. 혹시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지역감정이 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는가 질문해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2000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더이상 농경사회적인 집단의식으로는 버텨나갈 수 없는 시대가다가오고 있다. 세계는 "우리가 남이가"하고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21세기가 요구하는공동체의식을 가치고 도덕이고 불문에 붙이는 전근대적 집단의식이 절대로 아니다. 윤리는 지금엄격하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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