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이발사와 레이저포인터

입력 1998-11-26 14:09:00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있었다. TV에서는 주말 오락프로가 진행중이었다. 이발사는 머리를 깎는동안 계속 TV를 흘낏흘낏 보곤 하였다. 나는 앞에 있는 거울로 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이발사의 손이 움직이지 않아 거울을 슬쩍 올려다보면 이발사는 멍하니 TV를 보다가는 다시 움직이고 하였다.

잠시후에는 시퍼런 면도용 칼을 들고 나의 귀밑과 목덜미의 솜털을 깎았다. TV에서는 시끌벅적한 오락프로가 계속되고 있었고, 이발사는 칼을 움직이고 있었다. 주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거나, 등장인물이 바뀔때 특히 여자 탤런트가 나올때 이발사의 손길은 멈추어졌고, 나는 불안해서라도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그러면서 마치 큰 짐승이 다가오면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숨죽여위기를 넘기는 작은 짐승처럼 죽은 듯이 목을 내놓고 가만히 있었다.

약 1년 반이나 쓰던 레이저포인터가 고장이 나서 간단한 메모를 적어 서울로 우송했더니 개량된신제품에 건전지까지 넣어서 아무 조건없이 새로 보내준 것을 받아들고 감동했었던 최근의 일이생각났다.

머리카락을 털고 옷을 받아들고서야 대범한 척 한마디 했다.

"TV를 켜놓고 이발을 하니 좀 불안하네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는 그의 대답,

"켜 놓아도 어디 봅니까. 소리만 듣지요"

고객만족, 서비스시장 개방, 경쟁력 등의 낱말이 머리속을 맴돌며 그날 저녁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구미1대학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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