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입력 1998-11-23 14:11:00

하늘 높푸른 가을은 젊은이가 가슴을 활짝 열고 더 푸지게 더 깊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이 얼마나 희망에 부풀게 하는 철이냐?

단풍 곱게 물든 가을은 늘그막의 가슴이 기울어가는 목숨의 안타까움을 맛보라 한다. 이 얼마나서글픔에 주눅들게 하는 철이냐?

여름내내 강한 햇살을 먹고 자란 곡식을 갈무리하는 손들을 짧아진 해가 잠시도 쉬지 말라 다그친다. 이 얼마나 급한 마음이 더 급하게 채찍질하는 철이냐?

호젓한 포도를 쓸며 지나가는 늦가을 가랑잎 뒹구는 소리는 사람뿐 아니라 시간까지도 어서 가자재촉한다. 이 얼마나 초조에 불붙게 하는 철이냐?

곡식들을 모두 거두어 간 저물어 가는 가을이라 논밭의 허수아비가 이제 서 있기조차 쑥스럽단다. 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빈둥거리게 하는 철이냐?

지난날 같으면 시월 상달 차리기로 마음 설렐 때이나 무슨 바람 때문일까 상달차림은 말마저 사라지는 듯하다. 이 얼마나 안타까이 민속을 메마르게 하는 철이냐?

입동도 지났건만 갈무려질 자리를 못찾아 바람에 몰려다니는 가랑잎처럼 일자리에서 나와 '바람'잘 날만 기다리는 실업꾼이 수두룩하다. '햇볕'아! 진실로 이 겨레를 위하느냐? '바람'에 매달리고 '역사적 결단'에만 맡기지 말고 시급히 현실적 결단을 해야할 철이 바로 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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