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아들아!

입력 1998-11-18 14:21:00

아들아.

빚쟁이 빚받으러 오듯 어김없이 닥치는 시험날의 추위가 어른들의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하는구나. 그러나 누구든 겪어 본 이 과정, 이젠 인생의 한 페이지를 어엿하게 넘겼다고 생각하렴.내놓고 담배를 피워도 되지, 때론 친구들과 포장집에 앉아 소주잔을 한잔씩 나눠도 누가 뭐랄 사람 없지, 아닌게 아니라 기분하나는 깔끔하지?

누구나 겪는 시험날 추위

한번 치른 시험은 거듭 생각하지 마. 어차피 결과유책(結果有責)이니까. 문제는 새롭게 닥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있지. 누구든 한번 발을 담근 시냇물에 두번 담글 수는 없는 법이니까.

너희들은 지긋지긋하게 생각했겠지만 입시에 논술과목이 들어 간 사실에 대해 많은 수의 어른들은 내심 '그것 하나는 잘 한거야'하고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을걸.

이제 얼마후엔 대학에 합격한 초벌논객(論客)들이 수도 없이 탄생될거야.

정신적으로 짜임새있는 어른이 되기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논리를 전개해 봐.

아들아.

짜임새 있는 어른이 되렴

요즘 어떤 머리좋은 공직자가 쓴 논술문의 내용 일부가 국가적인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사실을알고 있나 몰라. 문제는 필자가 쓴 용어의 일부를 다수의 국민들은 필자의 의도와 달리 해석하고있다는 데 있지.

글쎄, 범부의 생각으로는 용어에는 반드시 보편타당한 용례(用例)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용례란 것은 때로 정치적,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원래의 뜻에서 얼마간 전의(轉義)되는 수가 많지. 이른바 언어의 사회성이란 거야. 이건 머리만 갖고는 안되는 거야.

중국 삼국시대의 북해태수(北海太守)를 지냈던 머리 좋았던 공융(孔融)의 얘기를 할까. 이웃의 노인이 하루는 어린 공융을 데리고 마을 노인들이 담소하는 곳으로 데려 가 그 총명을 입의 침이마르게 칭찬하는데, 듣고 있던 노인 한 사람이 "대개 어릴때 총명했던 아이는 크고 나니 그렇지도 않더군"하고 심드렁하게 말했어.

이 말을 잽싸게 되받은 공융이 "그런 말씀을 들으니 어르신네도 소시적엔 총명하다는 소리를 무척 많이 들었겠군요"했다. 이런 총명이 부럽진 않겠지?

아들아.

삼국시대에 수없이 명멸했던 군웅(群雄)중 공융의 얘기가 더 화려하게 치장되지 않는 걸로 봐 그의 이후는 그냥 우리끼리 짐작만 하고말자.

정작 우리가 부러워하고 지켜 나가야 할 가치는 흔들림없는 남자의 의지가 아닐까. 한번무엇이되겠다고 뜻을 둔 분야는 주위의 여건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의지가 값진 거지. 그리고 그 실현과정의 노력 자체는 남자의 매력이기도 하지.

흔들림없는 의지 키워라

처음에 지망했던 대학에 합격하거나 아니면 두번째 지망한 곳에 들어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세번째 대학에 들어가거나 미래를 향하는 한 청년의 뜻을 담는 데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을거야. 마치 대구서 서울가는데 첫번째 대학은 새마을호 열차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고 두번째는 무궁화호, 세번째는 통일호 정도겠지.

그러나 통일호도 사실 서울역에 닿는 데는 이상이 없어.

경계해야 할 일은 새마을호를 타고 먼저 도착했을 사람들을 생각해 중도에서 지레 뜻을 접는거야. 실로 작은 사람들이지.

아들아.

이젠 아버지와 함께 인생도 생각해보고 남자도 생각해보고 나라도 생각해보자.새벽의 맵짜한 공기를 얼굴 전체로 받으며 산에도 올라가 양탄자처럼 수북이 쌓인 낙엽을 푸근하게 밟으며 조락(凋落)의 의미도 새겨보지 그래.

그리고 이젠 엄마의 존재를 희생이란 말과 결부시켜 한번 생각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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