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학자가 엮고 우리나라서 찍은 최고 조선시선집 "햇볕"

입력 1998-11-17 14:07:00

중국인이 편찬한 우리나라 역대 시선집(詩選集)으로는가장 오래됐으나 지난 3백여년 동안 사라진것으로 알려졌던 명나라 말기때 학자 오명제(吳明濟)가 편찬한 '조선시선'(朝鮮詩選) 원각본(原刻本)이 완전무결한 상태로 중국 북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이번 발견으로 당시 한·중 양국간 문화, 특히 문학 교류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확보하게 됐으며 또 홍길동전의 작자 허균(許均)이 이 시선집 편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중국 북경대 기경부(祁慶富) 교수가 북경도서관 선실본(善室本)에 완벽하게 보관된 '조선시선' 목각간본(木刻刊本)을 발견해 정신문화연구원이 발간하는 계간 '정신문화연구' 72호에 관련 사진과 함께 발표함으로써 국내에 소개됐다.

오랫동안 '조선시선'을 연구해온 순천향대 박현규(朴現圭) 교수(중문학)도 북경도서관에 소장된이 시선집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멸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조선시선 원각본이 맞다"고 확인했다.

이번에 발견된 '조선시선'은 선조 33년,명나라 말기인 만력(萬歷) 28년(1600년)에 편찬된 2권의 책으로 북경도서관 도서목록에 '조선선조 33년 각본'이라고 적혀있어 이 책이 놀랍게도 중국이아닌, 우리나라에서 간행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책은 크기가 세로 30.5㎝ 가로 17.4㎝이고 매쪽마다 모두 18자로 된 9행으로 돼 있으며 분량은 상책(上冊)이 45쪽, 하책(下冊)이 50쪽 등 모두 95쪽이다.

이 시선집에는 통일신라말 최치원의 '강남곡'(江南曲)을 시작으로 허난설헌의 '양류지사'(楊柳枝詞)에 이르기까지 작가별 연대순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1백8명의 시 3백32수를 망라, 조선 고대 시가총집이라 불릴 만하다.

조선시선에는 또 작자 오명제의 것을 포함한 3편의 서문이 있는데 특히 허균이 쓴 5백69자의 긴'조선시선 후서'(后序)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시선집 마지막에 '조선장원허균서'(朝鮮狀元許均書)라는 검은 도장이 찍혀 있어 이책을 허균이 쓰고 간각(刊刻)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또 이 시집에 허균의 시가 21편, 그의 누이 난설헌의 시가 51편으로 다른 시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실려있다는 것도 오명제가 이 시집을 편찬하는데 허균이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는 것을증명하고 있다.

박현규 교수는 "오명제는 임란에 처한 조선을 돕기위해 출병한 명나라 군대를 따라 선조 30년(1597년)∼선조 32년 사이 두 차례의 조선 방문 기간 동안 친분이 두터운 허균의 도움으로 이 시선집을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중국인이 직접 편찬한 우리나라 시가집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실정에서 이런 시집으로 가장 오래된 조선시선 원본의 발견은 두나라 문예교류사를 밝히는데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고평가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