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 먼산 단풍을 바라보면 분명 가을인듯한데도 생활 에 쫓기는 스산한 마음속엔 가을산행은 고사하고 뜰에 핀 국화꽃내음조차 한 가롭게 즐겨볼 여유가 담기질 않는 요즘이다.
더더구나 주말마다 청첩장을 서너장씩 들고 이 예식장 저 호텔 누비다 보 면 노루꼬리같은 가을 오후는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그야말로 가을정취를 느 낄새없는'추래불사추'의 결혼시즌이다. 혼사를 축복하고 인정을 주고 받는거 야 세상살이요 사람사는 도리니까 단풍놀이 못가보는 아쉬움쯤 접어 두자고 마음 먹어보지만 우리 예식문화도 이제 뭔가 변화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게 가을을 보내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한해 결혼비용이 국가예산의 3분지1인 25조원 이라는 통계는 IMF시대가 아니더라 도 그러한 생각들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연간 40만 가까운 신혼부부들의 평균 결혼비용이 7천만원. 과연 소득 5천 달러 국가 신세대들의 사랑만들기 비용치고 적정한 액수일까. 솔직히 많은 부모들은 기둥뿌리가 뽑히는 기분이 들만한 액수라고 말하는것이 더 옳다. 이왕이면 먼저 결혼한 친구보다는 약간 더 화려하고 좀더 근사하게 치르고 싶어하는 것은 신혼세대의 철부지욕심이라 접어줄 수 있다. 또한 기둥뿌리 뽑더라도 자식요구를 다 들어주고 싶은것이 부모마음인것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서는 사회와 어른들이 인정을 누르고 차갑게 가르쳐야 할 게 있는 법이다. 신혼의 혼수 예단규모가 행복과 비례했던지를 더듬어 보 라. 웨딩드레스 따로, 사모관대 족두리 따로, 두번씩 의례를 치른 것이 행복 을 두배로 늘려 주었던지도 생각해보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이 결혼비용 순(順)에 따라 행복이 매겨지지 않더 라는 인생체험을 우리 어른들은 겪고 보며 살아왔다.
그렇다면 그동안 거품위에 들떠 흘러온 그릇된 예식문화를 바꿔 가야할 쪽 은 인생을 살아본 부모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어른들 스스로 사촌.육촌 집 안끼리의 체면대결, 기 꺾이기 싫은 가문대결을 의식하거나 동창친구네 며느 리보다 더 많은 예단을 갖고 오는 며느리를 기대하는 경쟁심, 친구사위보다 더좋은 시계를 사주려는 장모 욕심같은 건 없는지. 말로는 예식비 타령하면 서도 속마음에는 부모세계의 경쟁과 비교의식을 품은채 거품을 더 부풀리고 있지는 않은가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좋은 결혼이란 좋은 짝을 골라 내는 것이 아니고 좋은 짝이 돼주는 것이라 는 말이 있다. 아파트든 다이어든 예단이든 지참금을 듬뿍주고 좋은 짝을 골 라내듯이 하는 결혼보다 내딸 내아들이 상대쪽에 가서 얼마나 좋은 짝이 돼 게 하느냐를 가르칠 수 있다면 인구 4천만명의 개발도상국가 수준에서 25조 원의 결혼비용을 쓰는 이상한 나라는 생겨나지 않는다. 어차피 행복한 결혼 과 인생이란 어느 정도의 팔자 소관에다 열심히 노력는 삶의 자세에 좌우된 다. 간디도 결혼비용을 아끼려고 형과 사촌셋이서 합동결혼식을 했고 부자집 딸이 아닌 무식한 부인을 데려왔지만 끈질기게 가르쳐 50년만에 기어이 글자 를 읽고 쓰게 했다. 그것이 사랑이다.
세계 모든 사람이 애창하는'홈.스위트 홈'을 지은 작가'존 하워드'도 정작 자신은 평생 결혼도 못하고 가정도 없는 가난뱅이로 세상을 마쳤다. 그런 것 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결혼비용 25조원이란 씁쓸하고 이상한 통계를 놓고 다함께 비뚤어진 예식문화와 나라경제, 그리고'지참금은 가시침대'라고 한 영국속담을 생각해보자 이좋은 가을, 간소한 식을 치른 신혼부부들의 새 가 정에 축복있기를 빈다.
金 廷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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