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세계성과 지역성

입력 1998-11-06 14:51:00

기계에 서투른 나는 도스 체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또다시 들이닥친 윈도 체제에 대단히당황했었다. 무엇보다도 허공에 둥 떠있는 것같은, 사방 이곳저곳으로 뻥 뚫린 그 형식이 대단히불안했었다. 그러나 조금씩 윈도 체제에 길이 들어가면서, 오히려 나는 도스 체제가 답답해지기시작했다.

존재의 한 귀퉁이가 무엇엔가 꽉 덜미가 잡혀있는 듯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나는 오히려 내 인식적 특징이 윈도 체제에 훨씬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는 생의 형식이란 바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의 직관 그 자체가 안으로부터 발생시키는 흔들리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지금 나는 윈도 체제를 아주 잘 쓰고 있다. 둥 떠있는 허공의 방들을 돌아다니면서 클릭, 클릭,그리고 무한한 허공 사이에 내 언어의 집들을 띄워놓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윈도 체제를 싫어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문화의 몸이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을것이다. 유연하게 사고하고 하면서도, 내 문화의 몸이 새것에 저항했던 것이다.세계화와 지역성에 대한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굽어볼 수 있것같다. 결국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지금 세계화의 물결 앞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물결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것이다. 지금 현재 논의되고 있는 문화란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의 정신 생활만을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상에서 영위하고 있는 모든 행동의 형식화를 의미하는 것이다.게다가 모든 문화 정보들은 아주 장류롭게 멋대로 돌아다닌다. 윈도 체계 상에서 처럼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이다. 제한할 방법도 규제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그것이 정치경제적인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이 마땅치 않기는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그렇다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생의 형식은 이미 허공에 떠버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의 형식을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자아의 몫'이다. 세계화의 물결이 아무리 도도하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것은 하드웨어적 측면의 이야기이다.

소프트웨어가 부실하면 아무리 새걸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영원히 변방의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세계성 안에서 자신의 몫을 제대로 유지하고 또 확대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존재 한 귀퉁이를 문화적 정체성, 즉 지역성 안에 단단히 뿌리박아놓아야 한다. 어쨌든, 인간의 진화가 더욱더 진행되어 편재(遍在)의 기술을 획득하기 전에는 어쨌든 인간은, 더욱 확실히 말하면, 인간의 육체는 허공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여전히 대지가 필요하다.

문화적으로 그 대지는, 말할 필요도 없이 자국의 문화정체성이다. 그것이 없이는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를 절대로 생산해낼 수 없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원칙이 정해지고 나자, 벌써 꼴불견의 행태들이 속출하고 있다. 자존심이고뭐고 없이 눈앞의 이익만 쫓아서 벌써부터 수입상들이 과다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일본대중문화 개방 그 자체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건 어차피 어쩔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개방에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밤낮 오늘 하루 살고 말 사람들처럼 앞을 내다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세계 안에서 그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하는 일이다. 세계인들과 맞서서 이 광활한 21세기의 툭 터져있는문화의 공간에 우리의 것을 당당히 내걸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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