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동안 배기량 8백㏄에 불과한 소형 승용차부터 5천8백㏄에 이르는 대형 승용차까지 두루운전해 보고 나서 얻은 잠정적 결론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배기량이 같을 경우, 자동차 덩치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무조건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에는 '배기량이같을 경우'라는 단서가 붙는다. 자동차회사는 펄쩍 뛰겠지만 그럴것 없다. 나는 우리 정신 살림살이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폭스바겐'이라고 발음하는 독일어 '폴크스바겐'은 '국민차'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폭스웨곤(Folkswagen)'이라고 부른다. 같은 뜻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폭스바겐의 주종 상품이 '비틀(딱정벌레)'이라는 별명이 붙은 꼬마자동차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꼬마 자동차생산이 최근에 재개되었다). '국민차'라는 이름을 이 꼬마 자동차에게 붙인 속사정의 뜻이 깊다. '딱정벌레'를 탈 정도만 되어도 벌써 평균적인 국민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암시가 여기에 묻어있다. 그 이상은 여유로움이다.
폭스바겐의 명품 꼬마 자동차의 신문·잡지 광고가 볼만했다. 본지 참 오래되었는데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넓은 광고지면 한 가운데 '딱정벌레'자동차가 한대 그려져 있고, 그 밑에 짧은광고문안이 작은 글씨로 박혀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는 일찍이 경제학자 슈마허가 명저 '작은것이 아름답다'에서 그 '작음'의 미학, 운용하는 경제규모의 '작음'이 지니는 유연한 기동성의 여유로움을 찬양한 바 있다.그러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작은 것'에 대한 무조건적 찬양이 아니다. 슈마허나 폭스바겐 회사는 그러면 어떤것을 '작은 것'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배기량 2천CC엔진을 탑재하면 그럭저럭쓸만한데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큰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 그 정도 자동차를 탈 수 있는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작은 자동차를 타는 경우의 그 '작음' 혹은 '작게 보임' 그리고 그'작게보임'에서 오는 여유로움과 강력한 기동능력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대체로, 껍데기 크기에 견주어 엔진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거꾸로 말하면 배기량에 견주어 껍데기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르막이라도 오를때면 고르릉 고르릉, 매우 힘겨워한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하도 힘들어해서 한 손으로 에어컨 스위치 잡고, 오르막 오를때마다 에어컨 끄면서 운전해본 경력이 나에게 있다. 과열하면 속도가 안난다. 기관총도 그렇다. 총열이 과열하면 사거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나라나 집안 경제의 운용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한개인이 지니는 '가용 출력'과 밖으로 드러나는 '실제 출력'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요컨대 '간신히'들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집안의 경제에 대해서 한 말 한마디 들어둘만하다.
'나는 가진 것을 다 털어넣어서 뭘 사는 스타일이 아이라…'
그의 소설이 가파른 오르막길에서도 고르릉거리지 않는 까닭을 알겠다.
요즘들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영어 명령문이 한 구절 있다.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고 있다. 풀어서 번역해보자면 '되기는 큰 것이 되어도 보이기는그보다 더 작게 보여라'이런뜻에 가깝다. 고백하거니와 가진 이상으로 드러나기를 바라면서 살아온 나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그 신산스럽던 내 삶에서 이제 겨우 이 한구절을 건져올렸다.BE MORE, SEEM LESS…
〈소설가·미국 미시건 주립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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