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창을 통한 어머니와의 대화는 어색했습니다.
"오늘 어땠어?" 내가 묻습니다.
"그렇지 뭐" 일상에 찌들어 단내를 풍기며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피로한 어머니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창이 싫었습니다. 처음엔, 어머닌 일을 가지신 분입니다. 어머니의 일은 아버지의 사업이 걷잡을 수 없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살아보기 위해 고무줄 바지를 챙겨 입으신 것이라 성취감이라든가, 자아 실현이라든가 하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용기가 무서웠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집안 일만을 하시던 분이 어떻게 대가를 받고남의 집 살림을 맡아하시기로 했는지 궁금한 대신 말입니다.
어머니를 이해하는 대신 난 엉뚱하게도 결혼을 하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책임감이란 저런 것이구나를 되새기며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열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창처럼!
그러면서 어머니가 하시던 집안일에 빈 자리가 생김을 알아 차렸습니다.
설거지 그릇이 쌓이고 양말들이 빨래바구니에 가득해지자 밥을 먹기 위해 그것들을 정리하면서어머니가 가진 살림을 맡아 하는 재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었고 어머닌 살림하시는 재주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일상에서 어머닌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고 우리들처럼 피곤을 내색하지 않았지만 당신의 일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칭찬이나 격려는 없었습니다. 다만 투정이나 엉뚱한 요구만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닌 언제나,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창처럼 그 곳에 있었습니다.언젠가 어머니의 등을 밀어드리면서 여쭤 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였어?"
"엄마는 엄마의 50대를 남의 집 주방에서 보낼 줄 알았어?"
무덤덤한 얼굴의 내 어머닌
"그래도 내 딸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니까 걱정하지 않는다"
며 강한 믿음의 눈길을 주셨습니다. 주술을 외듯이….
이미, 철들어버린 딸들은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라는 당신의 또 다른 이름이 앞에서 당신 삶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하고 가족을 위하는 일이 어머니 자신을 위하는 일이고 오히려 마음 편한 일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창을 깨기란 참으로 힘이 듭니다.
내가 가진 마음의 창을 깨기란 더 더욱 힘겹습니다. 창은 그저 보이는 일상의 삶을 묵묵히 비추어 주기 위해 있는 것일 뿐입니다. 창으로는 걸어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자신있는 더 큰 힘으로 승화될 수 있는게 창이기도 합니다.
이젠 창의 힘을 믿고 싶습니다.
창으로 보여지는 하늘을 동경하기 보다는 창문을 열고 해묵은 먼지를 털어 내고 싶습니다.목욕 후 염색을 하시기 위해 비닐에 머리를 동여맨 어머니께 나는 또 묻습니다."엄마, 엄마가 읽은 책 한 번 말해 볼래"
"책? 책은 무슨 책?"
어머닌 졸음에 겨운 듯 합니다.
"빨리-"
"없어, 몰라, 학교 때 새벽길인가 읽었는데…."
"새벽길? 누가 썼는데?"
"몰라"
어머닌 한 잠 곤하게 주무실 것 같습니다.
다음 어머니가 쉬시는 날엔 동네 책방에 가 새벽길을 한 번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불을 덮어 드립니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창을 깨고 있다는 것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닫게 되어 다행입니다. 더불어 어머니가 새로 받아 들인 창을 지키기 위해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더더욱 다행입니다.혼자서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우리도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것이 우리 일임을 알기에일이 쉬울 것 같습니다.
저녁 8시쯤, 어머니의 슬리퍼 소리가 들리면 창가에 가 섭니다.
"오늘, 어땠어?"
"너는 어땠니?"
피로한 어머니의 얼굴 위에 내 얼굴이 마주 합니다. 창이 서로를 마주하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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