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출신의 시조시인 김일연씨가 두번째 시집 '서역가는 길'(동학사 펴냄)을 냈다.'한국의 정형시'시리즈 9번으로 나온 이번 시집은 시조의 정형적 율격 속에 시대의 전언과 리듬을 담아내고 있다.
'무너질 듯 내려앉은 하늘은 등뼈 위에/황토 흙덩이는 불거진 뿌리 움켜/비로소 천지(天地) 이듯이 한덩이로 엉기어//버티어 선 힘줄에 들끓는 고요의 힘/마침내 강 한자락 면면히 열어 놓는다/세월의 옹이마다에 사리(舍利) 맺힌/한반도(韓半島)' '노송(老松)'중에서.
이 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고 고단하게 서 있는 노송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풍경의기저에 깔려 있는 것은 무수한 외세의 침탈, 식민지 지배, 국토분단, 정권의 무능과 독재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야 했던 한반도인의 비극과 고통이다.
'사람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라/콜롯세오 굴방에 기다리는 검투사처럼/굶주린 사자의 뱃속같은/어둠을 보는도다// 불꺼진 식탁의 저녁 기도가 죽고/ 내 처음 사랑했던 어린 양이 죽은 후/황막한 가상공간을/떠도는 무덤들이여/데시벨을 넘어선 소리없는 절규가 적막히 끌고오는 다시 무서운 천년// 중세의 습지와 같은 어둠을 보는도다' '1998년'
이 시도 문명의 피로, 피폐화된 삶, 의미의 고갈등 '지금 여기'서 진행되는 삶과 시대에 대한 거시적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경북대 사대국어과 출신인 김씨는 80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시집 '빈 들의 집'을 낸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