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부인기념일 챙기기

입력 1998-10-21 14:00:00

아내는 괴롭다. 줄어든 수입으로 쥐어짜듯 살림을 하면서도 행여 풀죽은 남편의 기를 꺾을까 속시원히 바가지 한 번 긁기 어렵다. 멋진 생일,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내의 사기를 올려줘 IMF 한파를 헤쳐갈 부부간의 팀워크를 다져보는 것은 어떨까. 돈 걱정은 필요없다.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니까.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선물

전업주부인 박혜영씨(30)는 올해 생일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남편 회사가 어려워 월급도 제대로 안나올 정도로 힘든 IMF 원년에 맞은 생일. 그래도 축하인사 한마디는 기대했는데 남편은아는지 모르는지. 저녁상에서 때아닌 신경질까지 부리다 포기하고 이부자리에 누은 박씨의 눈에눈물이 핑 돌았다. 널찍한 천장 전구덮개에 '수고많지, 생일 축하해' 라는 글씨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살림이 나아지면 좋은 선물 사주겠다'는 남편의 말에 마냥 행복해할 수밖에 없었다.이날 박씨의 남편이 보여준 묘기(?)는 알고 보면 간단한 것. 대형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레터링용스티커나 판박이를 구입해 필요한 자모를 골라 붙이면 된다.

더욱 극적이 효과를 원한다면 야광 테이프를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 불을 끄면 어둠속에서 파란빛을 발하는 테이프로 원하는 문구를 벽에 붙이면 끝.

아무리 긴 문장을 써도 몇천원이면 족하다. 하지만 그만한 여유도 없다면 상품권을 선물하자. '설거지' '청소기 돌리기'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사일을 종이에 적어 선물하고 언제라도 이를 제시하면 그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값비싼 백화점 상품권 이상으로 아내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필요한 것은 성의뿐.

▨작지만 재미있는 선물

'프라이비트'에 근무하는 안승민씨(30)는 1년 3백65일을 기념일화 하는 형.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자그마한 선물로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패션유통업체에 근무하는만큼 유행민감도는 A+. 비싸지 않지만 한창 유행하는 액세서리를 선물하면 아내가 아줌마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데도 그만이라는 것이 안씨의 귀띔.

이처럼 작은 선물이라도 주는 방법에 따라 받는 기쁨의 크기는 달라진다.

어떤 영화에서는 반지를 아이스크림에 넣어 선물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 정도가 너무 극적이라면 여러개의 상자에 선물을 넣는 고전적 방법은 어떨까. 선물상자를 좀더 큰 상자에 넣은 후 남은 공간을 사탕, 초콜릿 등으로 채우고 또 그것을 더 큰 상자에 넣는 방식. 좀더 정성을 쏟는다면바케트빵을 둘로 나눈후 속을 조금 파내고 선물을 넣을 수도 있다.

▨추억여행

결혼 26년째를 맞는 김윤복씨(52)는 IMF로 집안형편이 넉넉지 않지만 부산 해운대로 추억여행을떠날 생각이다. 사느라고 바빠 결혼 20년이 넘도록 결혼기념일 한 번 못 챙기다 지난 25주년때신혼여행지였던 해운대를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신혼여행때 머물렀던 호텔이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장급 여관보다 못할정도로 낡았지만 신혼 첫날밤의 감흥을 새롭게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넉넉하지 않았던 신혼때처럼 먹고 쓰니 여행비용도 적게 들었다.

여행후 깨달은 또 하나의 사실. 한 번의 멋진 결혼기념일 행사로 일년이 편안해졌다는 것. 단번에'가정적인 남편'으로 지위(?)가 격상됐고 '당신이 뭐 해줬냐'는 부부싸움 단골 메뉴도 사라졌다.이처럼 기념일에 여행을 한다면 테마여행이 훨씬 의미있다. 아무리 초라한 곳이라도 서로의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면 늘 새롭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 없다면 여유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골여행이 적격. 커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경주 보문단지 여행도 해볼만 하다.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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