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발언대-촌지 실태 접하고 교육자로서 부끄러움뿐

입력 1998-10-19 14:08:00

천근같은 중압감을 받으며 출근하는 발길은 무겁기만 하다. 가을 아침, 산뜻한 공기와 함께 파란하늘이 싱그럽게 보일 듯한데 쳐다보려니 해 보기가 부끄럽고 땅을 내려다 보려니 땅 보기가 부끄러우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려니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 눈 둘 곳이 없다.

지나는 사람들마다 '촌지' 구덩이에 빠진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는듯한 마음이 앞서서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시궁창보다 못한 썩은 물속에 내 몸과 코를 묻고 살았다고 생각하니 쇠 솔로 살갗을 씻어내고 코안을 수술하여 새로운 냄새를 맡게 하고 싶은 생각 뿐이다.

어쩌면 촌지 명칭도 그렇게 많고 거기에 물든 교원도 그렇게 많을까.

내가 교단과 그 주변에서 살아온 41년, 나에게 배웠던 코흘리개들도 마흔살을 다 넘겼고, 교감·교장할때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도 어엿한 성인이 되어서 교단에 섰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촌지병에 감염된 사람이 없을까.

우리가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렇게 썩은 물을 만들어서 그 속에 스스로 빠져 헤어나지 못한단 말인가, 또 나자신 또한 촌지병에 물들었는데도 모르고 넘어가지나 않았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러움과 두려움 뿐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몇푼씩 모은 돈으로 학급문고를 만들어서 아동들과 학모들에게 돌려가며 읽게하는 ㅅ교 ㄱ선생님, 오지에서 무너진 책상 조각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재활용하면서 스스로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이는 ㅇ교 ㄱ교장님, 아침 저녁마다 학생들에게 육상을 직접 가르치는 ㄷ교ㄱ교장님·ㅇ중학 교감님, 퇴물 컴퓨터의 용량을 늘려서 학생들 교육에 활용하는 ㅇ교 ㄱ교감님,농촌 아이들을 도시 아이들과 어울려 생활하게 하며 사기를 키워주는 ㄴ교 ㅅ교장님 등 헤아릴수 없는 모범의 교원들.

이 많은 분들이 흘려주는 맑은 물과 깨끗한 바람은 어디가고 퇴폐의 물과 오염된 공기만 교단에묻어 있으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교육행정에 병이 든 때문에 이런 것이 아닐까. 원천적으로 '환자'가 교단에 온 것이 아닐까. 물질문화의 병폐가 우리 교단을 오염시킨 것이 아닐까. 수없는 후회와 걱정이 교차되고 앞길이 두렵다. 우리 교육의 앞길이 두렵단 말이다.

이번 기회에 모두가 먼지 묻은 옷을 훌훌 털어버리고 오물이 묻은 몸은 맑은 선생님들께 배워서씻어 버리고, 마음이 병든 촌지환자는 스스로 치료를 하든지 아니면 물러가든지 하여서 백년대계라는 말이 어울리는 교육마당을 질펀하게 펴보자. 이것 없이는 정부에서 말하는 '제2의 건국'이이루어질 수 없다.

혹시 후세에 누가 묻거든 '제2의 건국'에 교육으로 앞장섰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을만들자. 우리는 썩지만은 않았다. 멋지고 훌륭한 교육을 담당할 능력도 있고 자신도 있음을 잊지말자.

이동후(경북 안동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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