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교등급제 꼭 해야 하나

입력 1998-10-19 00:00:00

서울대가 고교간의 학력 격차를 인정하는 고교등급제를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02년도 대학입시부터 도입하는 무시험전형의 취지가 뿌리째 흔들리고, 교육개혁과는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짙어진다. 그런데도 서울대가 당초와는 달리 굳이 고교등급제를 고집하는 것은 고교교육 정상화를 외면한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무시험전형은 고교교육의 파행을 막고 대학에서 정상적으로 수학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려는제도다. 현행 대학입시는 몇차례 보완을 거듭해도 사정 기준이 결국 학력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해과외가 기승을 부리고 전인교육·인성교육이 실종되는 병폐를 낳았다. 무시험전형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강도높은 개혁 의지의 소산이며, 학력을 기준으로 한 고교등급제는 학업성적이 절대적인기준이다. 고교등급제와 무시험전형의 지향하는 의도는 이같이 정면 배치된다.

전국의 고교를 학력에 따라 평가하고 서열을 매기면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부작용과 비교육적 사태가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평준화 지역에서는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비평준화 지역에서는 명문고 입학을 위해 중학교때부터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질 것이다.이 경우 지금의 교육 병폐가 지양되기는커녕 되레 입시경쟁을 확산시키고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서울대가 고교등급제를 고집하는데는 전국 고교의 학력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러나 그 차이가 과연 절대적인가 하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현행 고교의 학력은 창의성보다는단순 암기와 무리한 주입식 학습의 산물이다. 그때문에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질과 반드시비례한다고는 볼 수가 없다.

이미 이를 입증하는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수능 성적을 위주로 한 정시 및 특차 모집의 학생들보다 추천제로 들어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오히려 높았기 때문이다. 교육 환경 등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수능 점수가 낮아도 본래 자질이 우수하면 대학에서 잠재된 역량까지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준 셈이다.

고교등급제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고교 교육이 완전히 정상화된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고교등급제가 도입될 경우 나머지 문제들을 아무리 손질해도 교육 정상화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은 명심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입시 흐름을 주도해온 서울대가 이같은 사명감으로 과거의 입시방식을 과감히 벗어던질 때 대학입시 풍토가 새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는 고교교육 정상화와 대학개혁에 앞장서겠다는 사명감을 저버리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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