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적 거짓말들

입력 1998-10-12 00:00:00

중국 상해의 옥불사(玉佛寺)에는 옥으로 조각된 누워있는 와불상이 보존돼 있다. 이 깨지기 쉬운 국보급의 문화재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난동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무사히 보존된 것은 모택동의 초상사진 덕분이었다.

닥치는대로 불교 유적들을 파괴해 들어오는 홍위병들의 습격을 앞두고 옥불사 스님들은 기묘한 지혜를 짜냈다. 바로 거대한 옥불상을 모택동의 초상이 찍힌 신문지로 둘둘감아서 포장한 것이다. 대웅전에 들이닥친 기세등등한 홍위병들은 신문지속에 옥불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손끝하나 대 지 못하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신문지든 그림이든 모택동의 초상을 훼손한다는것은 바로 목 숨을 내놓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신격화된 통치자의 카리스마는 때로 보편된 상식이나 이성적 합리를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일 화다.

일본의 경우 아직 그러한 국민적 카리스마가 '천황'이란 존재를 통해 존재한다. 그저께 일본방문 을 마치고 귀국한 김대통령의 방일외교 성과를 짚어보면서 천황카리스마에 젖어있는 일본이 세계 인의 보편된 상식을 벗어나 앞으로 1백년이 지나도 진정으로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을거라는 의문 을 품게된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이후 50년동안의 한일 정상외교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역 대 일본수상과 외무장관들은 유감과 사과와 사죄라는 외교용어를 번갈아 써오며 수사적(修辭的) 인 '말잔치'를 해왔다. 그러나 정작 일본국가와 국민을 실질적으로 상징하는 일왕은 여전히 수필 적인 표현으로 양국 국민감정의 골을 교묘히 넘나들고 있을 뿐이다.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유감', 노태우 대통령에겐 '통석의 념', 김영삼 대통령에겐 '깊은 반성' 그 리고 이번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그저 '깊은 슬픈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말로 떼우고 끝냈다. 나쁘게 보면 일본땅에 찾아간 역대 한국 대통령들을 데리고 논듯한 불쾌감을 떨치기 어렵다. '외교란 조국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애국적 행위'란 말이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외교팀이 일본의 수상이나 장관급들의 '애국적 거짓말'들에 번번이 속아왔는지 아닌지는 그동안 수많은 회 담에서 받아낸 약속들 중에서 우리손에 얻어낸 것이 얼마나 되느냐를 계산해 보면 된다. 재일동 포 법적지위 향상문제, 문화교류, 인적교류, 무역역조 개선, 기술이전, 대북 공조문제, 위안부 문 제, 과거사 사죄문제… 하나같이 역대 우리 대통령들이 일본행차때마다 내걸었던 판에 박힌 의제 들이다.

다섯명의 대통령이 찾아가 제의해도 수십년째 여전히 묵은 의제로 그냥 남아 있다는 것은 상대가 말잔치만 해왔다는 반증이다. 또한 카리스마를 지닌 일왕의 입에서 명백한 단어로 사죄(사자이) 가 나오지 않는한 백명의 수상들이 사죄보다 더 한 표현을 쓴다 해도 1억 일본인들은'우리는 사 죄를 않았다'고 자부할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다.

결국 이번 방일외교에도 일왕의 사죄가 없었던 만큼 수상의 사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실제적 사 죄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외교성과 홍보를 위해 일왕과 수상의 말한마디 토씨 하나까지도 국민들 듣기 좋아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자화자찬에 빠지는 외교는 과거 정권때 자주 봐온 스타일이다. 일본왕은 꼼짝 도 않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쪽에서 찾아가서 '천황페하'라 추켜주는 정상외교는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혹시나 일왕이 사죄수준으로 말해줄까 눈치봐가며 갔다가 역시나 그렇고 그 런 언어유희만 듣고 돌와와 사죄한 거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자위적 해석을 하는 외교도 몇십년 했으면 이제는 패턴을 바꿀 때가 됐다. 대일외교 성사의 요체는 사죄나 해달라고 채근하는 식이 나 그쪽의 말 한마디 놓고 사죄냐 아니냐는 일본말 해석에 머리 굴리는데 있는 게 아니다. 대일 외교의 현실적인 비책은 단 두가지, 언제라도 동경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핵개발과 달러를 지 니는 것 뿐이다. 21세기의 동반자로 가되 눈은 바로 뜨자는 얘기다.

김 정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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