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공작기계 등의 모터를 제어하는 핵심부품 엔코더를 제조하는 지역 벤처업체 메트로닉스 대표 김병균씨(32)는 창업 초기 자금조달로 고생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온다. 독일과 일본제품이 80% 이상이던 국내 엔코더 시장에 김씨가 뛰어든 것은 지난 95년. 창업초기 예상했던 연구개발비는 3억원이었지만 개발기간 2년간 투입된 돈은 8억원을 넘어섰다. 주위에서 끌어다댄 돈에 융자 4억원. 그나마 저리로 지원되는 자금을 받아 다행이지만 어차피 빚더미인 것은사실이다.
그러나 올들어 월매출액이 1억3천만원을 넘어서며 안정궤도로 접어들고 있다. 한번이라도 메트로닉스 제품을 써본 업체는 일본제품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세계수준의 국산 고품질 엔코더가 개발된 덕분에 부르는게 값이던 외국제품 가격도 내렸다.의료용 '디지틀 X-선 영상촬영장치' 제조업체인 (주)라즈 역시 96년 4월 창업이후 2년 가까운 연구개발기간을 거쳐 지난해 12월 첫 매출을 올렸다. 동료, 선후배들의 쌈짓돈을 끌어모아 만든 자본금 1억원에 각종 벤처지원 대출금이 2억원. 부채비율 2백%가 창업 2년 남짓한 라즈의 재무성적표다.
다행히 기술력을 인정받은 라즈는 현재 산업자원부에서 2백억원을 들여 중기거점 사업의 하나로실시하는 의료장비개발에 삼성 등 대기업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 DDR은 미국 스터링사가 지난 7월 처음 선보이며 대당 35만달러를 요구할 정도로 고부가가치를 자랑하는 첨단 X-선 의료장비.(주)라즈 대표 박정병씨(36)는 "융자라도 해서 기업을 키워나가는 벤처맨들은 극히 드물다"며 "대출자체가 별따기일뿐 아니라 필요한 서류분량이 1백50장이 넘다보니 창업초기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정작 벤처기업이 원하는 자금은 융자가 아니라 투자다. 융자자체가 걸음마단계의 기업에는 그림의 떡에 불과할뿐 아니라 다행이 돈을 빌린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이자부담, 원금상환,부채로 인한 재무구조 악화 등은 결국 기업을 압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 그럼에도 융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은 벤처에 대한 투자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투자용으로 도입한 외자조차 융자용으로 전락시키는 정부의 벤처육성정책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정부는 중소기업지원을 위해 들여온 IBRD 차관 4천억원 가운데 1천억원을 창업투자회사에 배정했다. 정부는 창투사에 돈을 주면서 달러 환율을 적용, 담보와 함께 약 8.5%의 금리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창투사가 벤처기업에 돈을 줄때는 무담보, 무이자로 투자할 것을 요구했다.창투사측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자 정부는 우격다짐으로 돈을 떠맡겼다. 결국 손해보는 장사를할 수 없는 창투사는 당초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기업을 상대로 지분참여형식의 투자가 아닌 융자에 나섰다. 기업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투자에 나서야 할 창투사가 이런 형편이니 다른 금융기관 상황은 말이 필요없다.
지난 1일 국민회의는 벤처기업 지원을 위해 정부 출자 50%이상인 자본금 1천억원 규모의 '주식회사 한국벤처'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대구시도 지역 창투사와 기업인, 민간이 참여하는 조합형식의 벤처투자용 공공펀드 1백억원을 조성키로 했다.
이같은 공공펀드를 조성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 자금은 융자가 아닌 투자용이다. 그것도 1, 2년내에 수익을 바라는 단기투자가 아닌 5년이상 장기투자용이다. 코스닥 붕괴로 민간자본 유입이봉쇄되자 공공펀드를 통한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민간투자를 이끌어내자는 고육지책인 셈이다. 이스라엘의 요즈마(YOZMA)펀드, 싱가포르의 EDB (Economy Development Board)펀드 등은 벤처활성화를 이끈 대표적 공공펀드들이다.
지자체와 정부, 지역기업과 민간인이 참여하는 공공펀드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경우 민간자본유입의 고무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주식시장 침체, 부동산 바닥세 등으로 갈 곳을 잃은 자본을 벤처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 이같은 민간자본 유입은 과거 정부가 수천억원대의 지원금을쏟아부은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결실을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기업은 융자에 따른 이자, 원금상환, 재무구조 악화 등의 부담을 덜 수 있고 자기 자본이 투입된 만큼 기업을 살리기 위한 투자자들의 아낌없는 지원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공적으로 코스닥에 등록될 경우 투자액의 수십배에 이르는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후 투자도 원활해 진다는 것.공공벤처펀드는 역외로 진출한 지역출신 벤처기업가들을 다시 불러들이는데도 쓰여야 한다. 대구에 가면 최소한 자신들의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믿고 투자해 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인식시킨다면 지역 벤처육성은 물론 타지역 벤처의 역유입도 가능할 것이다.
중소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서는 벤처기업 육성이 시급하다. 또 이를 위해서는 각종 메리트를 제공, 민간자본이 벤처기업에 투자할수있는 길을 확대하는것이 선결과제다.〈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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