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로자의 집 실직자들의 추석

입력 1998-10-03 14:30:00

대구시 중구 태평로3가 속칭 자갈마당 한모퉁이에 자리잡은 '근로자의 집'. 일터를 뺏기고 삶의보금자리를 잃어 갈 곳 없이 떠돌던 노숙자들이 모여사는 곳. 40여명의 실직자들은 올추석 고향마저 잃은 채 이곳 근로자의 집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차례를 지낼 예정이다. 저마다의 가슴에차마 다 쏟아내지 못한 한스런 응어리를 안고서.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대구역에서 노숙을 하다 이곳에 와 아기를 낳은 임씨(37) 부부, 일자리를 잃고 집을 나온 뒤 대구체육관에서 살다가 경기를 보러온 아들에게조차 외면당한 김씨(41), 밀린 방세를 내라는 집주인 성화에 못이겨 혼자 나와 근로자의 집에 살며 한달간 취로사업으로 번 돈 14만원을 꼬박꼬박 남은 네가족 생활비로 보내는 유씨(45).

이번 추석에는 이렇듯 서로 다른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차례를 지낸다. 오랜만에 몸단장을하고 음식도 직접 차릴 생각이다. 윷놀이도 하고 저녁이면 노래방도 갈 계획이다. 비록 피를 나눈형제는 아니지만 이날만은 힘겨운 삶속에 가족같은 살가운 정을 나누리라.

근로자의 집 김경태 목사는 "거리로 내몰린 실직노숙자들 대부분이 빚에 쪼들리고 가족에게 외면당해 추석에도 집에 갈 수 없다"며 "어느 때보다 풍성해야 할 추석에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것도서러운데 하릴없이 거리를 떠돌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함께 모여 차례라도 지낼 수 있는 이들은 그나마 행복한 셈이다. 하루 한끼를 해결못해무료급식소를 전전하는 사람은 대구에서만 2천여명. 이번 추석 연휴에는 무료급식소 10여곳 가운데 절반 이상이 문을 닫는다. 때문에 한가위에도 상당수 실직노숙자들은 점심 한끼를 위해 시내를 떠돌아 다녀야 할 형편이다.

그나마 '요셉의 집'은 연휴 중에도 추석음식을 마련하고 참치캔, 수건, 양말, 사탕이 담긴 선물꾸러미도 준비한다. '희망의 집'도 추석 당일 아침에 노숙자 30여명이 모여 차례를 지내도록 하고점심식사도 제공하기로 했다. 〈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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