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서상호(논설위원)

입력 1998-10-01 14:18:00

해방후 우리 권력의 역사는 '긍정의 반복'이 아니라 '부정의 반복'이었다. 새로 권력을 잡은 정권은 언제나 앞의 정권을 부정했다. 국민의 정부가 새시대를 여는 패러다임으로 제시된 제2건국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지양되지 못하고 앞의 정권처럼 과거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현재의 위기는 지난 30여년간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킨 데에서 비롯됐다"고 경제위기의 책임을 박정희모델에 넘겼다. 물론 경제적측면에서 성과를 인정한 긍정과함께. 그리고 "민주주의를 했다면 경제위기로 발전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후 "나는 민주주의를 해서도 경제가 좋아진 모델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는 다분히 민주주주의 대신 권위주의(개발독재)로 경제기적을 이룬 박전대통령을 의식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현경제의 위기의 뿌리가 박정희모델에 있음은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30년전 당시로서는 최선의선택이었다. 세계은행이 지난 31년간 세계에서 사실상 가장 빨리 성장한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또 중국 인도 태국등 많은 개도국들이 박정희모델을 자국의 개발모델로 채택하고 있는 것만 봐도성공적인 시스템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볼수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와 비슷한 경우로 미국의 대공황을 구한 케인즈이론을 들수 있다. 30년대 미국을 구한 케인즈이론의 큰정부는 80년대 경쟁이 격화되자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래서 81년 레이건대통령이 작은 정부로 미국경제의 회복을 시도했다. 결국 91년부터 미국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아무도 케인즈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상황의 변화에 따라 경제시스템은 바뀌어져야한다는 미국 체너리교수의 '시스템진화론'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성공을 보고도경제시스템 전환에 실패한 노태우와 김영삼 양전대통령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공인받고 있는 후진국 개발의 성공 모델인 박정희모델을 굳이 우리손으로 실패모델로 전락시킬 필요가 있을까.

민주주의를 했다면 경제위기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도 문제는 있다. 민주주의의 표본인 영국이나 스웨덴등은 왜 IMF구제금융을 받았는지 설명이 안된다.

그리고 김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해서도 경제가 좋아진 모델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는 이미 때가늦었다. 국민소득 1천달러이하의 후진국개발이론에서 권위주의냐 민주주의냐하는 논쟁이 있는 것이지 우리와 같이 국민소득 1만달러를 기록했던 중진국내지 준선진국에서는 선택의 문제가 될수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라야만 하는 것이다. 하버드대학 배로우교수논문에도 20세기들어 후진국의 경제개발에 권위주의로 성공한 나라는 있어도 민주주의로 성공한 나라는 아직 없다고 돼있다.

청와대의 설명처럼 "김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중 의식할만한 사람이 박전대통령외 누가 있겠는가"라든가 브레인중의 한사람인 한상진 서울대교수의 말처럼 "제2건국운동은 김대통령이 박전대통령에게 던진 도전장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박전대통령을 너무 의식하고있는 것 같다. 대통령 주위에서 만든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더욱 제2건국은 과거의 부정으로 비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운동에서 이렇게 과거를 부정적 시각으로 파악하려는 것은 창조적파괴가 되기 보다는 산업화세력을 분리시키는 분열적 파괴가 되지 않을까.

지난 9월중순 서울서 열린 아시아언론인 포럼에 참석했던 인도대표는 "우리는 박정희모델을 개발모델로 했는데 한국이 위기에 빠지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심각한 질문을 던진 일이 있다.우린 여기에 답해 주어야 한다. 박정희모델은 개도국의 발전전략로 긍정되고 DJnomics는 우리를비롯한 위기에 빠진 아시아를 구원할 해결 모델로 격상시켜 나가야 한다. 영국 블레어총리의 '제3의 길'처럼. 이를 위해서도 박정희모델의 의의에 관한한 부정보다는 긍정에서 출발하는 것이 효과적이 아닐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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