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

입력 1998-09-30 14:24:00

지난주, 포항공대 김원중교수(국문학)의 점심한담(點心閑談)에 좌중엔 폭소가 터졌었다. 중국연변서 온 문인다섯분을 모시고 경주엑스포 가이드를 했는데, 구경후 "무엇이 가장 재미있더냐"고 물었더니 싸움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었고 그다음이 엿장수 가위춤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거였다.중국사람들에게야 신라문화가 어떻고 해봤자 번데기앞에 주름잡는 격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일등재미가 짜증구경에 지친 한국사람들의 질펀한 취중싸움질이었다니 웃음뒤에 부끄러움이치밀어올랐다. 첫단추 잘못끼운 말한마디가 입씨름-욕설-멱살잡이로 치달아간, 현장을 안봐도 눈에선한 그장면-.

SBS일요프로에 중고생을위한 프로 '가슴을 열어라'가 있다. 부모·친구·선생님에게 하고싶은말, 억울한것, 답답한 사연을 TV화면을 통해 목청껏 쏟아냄으로써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확풀어주자는 의도.

지난달 방영초기의 한장면을 즐겁게 기억한다. 서울 어느 여중생이 팔을 내저으며 고래고함치던소리. "저희 엄마 아빠는요! 주말만 되면요, 자기네끼리만 놀러다닙니다아! 영화관이다 유원지다쇼핑이다해서 한번도 빼먹지않고 나다니십니다. 좋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밥통에 밥은해놓고 가셔야죠! 남들은 따끈따끈한 밥 먹을때 저는 라면만 먹습니다아!…"

TV속의 전교생과 TV를 쳐다본 많은 사람들은 1분도 채안되는 시간에 쏟아놓은 이 기막힌 자기폭로, 눈물이 찔끔거릴만큼의 해학적묘사에 박수를 쳤다.

그런데 몇회가 지나지않아 응어리를 풀어놓는 고백은 간곳없고 썰렁한 코미디, 어색한 말장난으로 퇴색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의아했던 의문은 최근 출연중고생들이 예행연습에서 말문이 막히고 대사를 까먹는등NG를 하도많이내 제작팀이 꽤나 골탕을 먹고있다는 사연이 소개됨으로써 비로소 이해가 갔다.공개된 장소, 다중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한 경험이 전무한 우리청소년들로서는 곧 밑천이 드러날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초중고 12년에 걸친 주입식교육, 토론없는 교실풍경은 대학엘 가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초등학교땐 그래도 학급회의란게 있지만 중학에만 올라가면 없다. 회의자체가 진행이 안되기 때문이다.열린교실은 무엇보다 상대방과의 대화능력을 키워주고 적극적인 사람을 키워낸다. "선진국아동에비해 우리아이들이 발표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곧 자유로운 의사표시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요,장차는 국제사회의 경쟁력저하로까지 귀결된다"고 국제경제학자들은 이미 지적한바 있다.대화는 또한 '낮은 목소리'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단체들의 회의풍경을 보면 토론인지 싸움인지 분간할 수없을 만큼 목청이 높아져있다. '목청 큰×이 이긴다, 차사고가 났을땐 일단 큰소리부터 쳐라' 이두가지 사례는 현실사회속에 그대로 있다.

'가슴을 열어라' 이TV프로와 현정치판을 동시에 보면서 우리는 우리아이들이 이런 닫힌교실속에성장하는한 20년 30년후에도 똑같은 정치판이 되풀이되리라는 무력감에 젖는다. 공업용미싱, 사정(司正·射精)시비, 내란선동(장외투쟁)논쟁같은 말장난이나 치는 국회-그래서 국회의원은 국해(國害)의원, 국민의 정부는 민字다음에 '회'字가 빠졌고, 한나라당은 '한심한 나라당'의 약칭이 라는우스개까지 돌아다니는 지금이다.

이해찬 교육부장관은 지난26일 MBC 토론에서 교육개혁을 통한 21세기 국가경쟁력강화를 설파했다. 그러나 무엇이 교육개혁인가? 서울대입시개편이 교육개혁인가, 과외없애는게 교육개혁인가.엄청난 교육개혁이전에 우리아이들의 말문을 틔워주는 '교실'개혁 이것 한가지만 제대로 된다면,그래서 상대방과의 대화매너 딱한가지 어릴때부터 체질화시킬수 있다면 이땅의 정치개혁은 이미와있는 것을-.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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