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가을풍경

입력 1998-09-24 14:02:00

아름다운 가을이다. 큰 비가 훑고 간 흙더미 위에도 들꽃은 피고 비바람에 누워있는 벼도 알이차 익어간다. 기린처럼 목이 긴 수수대도 고개를 숙이고 조이삭도 질세라 푹푹 고개숙여 기도하고 있다. 저녁노을이 고운 하늘아래 사과알이 발갛게 익어간다. 청설모들은 잣나무에 올라 잣따기에 바쁘고 다람쥐들은 밤나무 아래서 밤까기에 여념이 없다.

참깨도 털고 고구마도 곧 캐야겠다.김장배추와 무는 일렬로 서서 무럭무럭 자란다. 매일 새소리에 깨고 벌레소리를 자장가로 잠이드는 이곳이다. 하루는 밤중에 기상 시계소리에 놀라 깨어 났는데 시계를 보니 12시를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보니 귀뚜라미가 내 방안에 들어와 울고 있었다. 그 녀석 참 하면서다시 잠을 잤다. 또 하루는 세수를 하는데 벼락같은 큰 소리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괴성이 나왔다. 놀라 달려온 수녀님들이 손톱만한 청개구리를 잡고 웃는다.

며칠전 새벽엔 예초기 소리에 잠이 깼다. 부지런한 언니 수녀님이 날도 밝기전에 풀을 깎는줄 알고 나도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그 소리가 나를 따라 다닌다 싶어 다시 들으니 모기 한 마리가 필사적으로 나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풀깎는 소리가 아니고 모기 소리였다. 그 녀석 참 일찍 일어난 것이 약간 억울도 했지만그도 살려고 저토록 애를 쓴다 싶어 잡지않고 방에 두고 나왔다.

키재기라도 하는 것일까. 코스모스들이 내 키보다 높게 자라 청초한 웃음을 머금고 바람이 불때마다 한꺼번에 웃는다. 매일 따는옥수수는 이곳의 유일한 간식거리, 비가 많이 와서 잎만 무성하던 콩밭에 콩이 열릴까 했는데 한알씩 심은 것이 100배의 결실을 보는 것도 신기하다. 마당 가운데 도라지 꽃이 지고나니 백공작이 잔치를 벌였다. 꽃본김에 연주회를 여는지 벌레들이 바쁘다. 건너편 박씨댁에서 옥수수 찐것과방울토마토를 두고 가셨다. 농사 지은 것을 꼭 이렇게 나누어 먹는 두분의 마음 씀씀이에 늘 고마울 뿐이다.

귀농운동이 인다고 한다. 버리고 떠난 땅마다 어서 어서 젊고 씩씩한 주인들이 와서 곡식을 심고남새밭을 가꾸면 좋겠다. 그래서 반딧불이도 소쩍새도 다시 돌아와 함께 살면 좋겠다. 그러려면그들과 어울리는 나도 마음을 순수하고 곱게 다듬어야겠지. 모두 백공작 보러 오이소. 문 오틸리아〈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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