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화엑스포 관람기

입력 1998-09-12 00:00:00

현존하는 동물이 생식으로부터 생존을 보장받았다면 인간은 자신이 낳은 문화로부터 생존의길을 열어왔다. 쓸쓸한 광야가 생명을 얻고 말없는 대지에서 정신의 싹을 피워올린 것이 인간의 땀일진대, 그 땀이 켜켜이 쌓인 것을 우리는 문명이라 부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문명의자식이다.

세계의 여러 문명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그래서각별할 수밖에 없다. 고대문명을 이룩한 저 오래전 사람들의 흔적을 살펴보고 거기서 자연과 신과 대화하던 인간의 원형적 모습에 눈 뜰수 있기를 그런 기대가 우리의 첫 발걸음을 '세계문명관'으로 이끈다.

문명관은 가령, 인간 속에 내재된 죽음을 형상화했다고도 할수 있는 피라미드를 만든 이집트, 붓다의 정신세계를 낳은 인더스, 황하의 거친 물살을 딛고 일어선 고대중국, 신과 황금의 시대를 엿보게 하는 잉카문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저 문명을 이룩한 이들을단지 고대인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탄생시킨 무수한 신화와 전설들이 현대의우리에게 아직도 살아숨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경주문화엑스포의 독특한 점은 고대문화를 단순히 강넘어 불처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국의 풍물전시장과 독특한 먹을거리로부터 여러나라의 민속공연과 예술인들의 기획 전시등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현재적 행위를 통해 오래된 문명들의현재화(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엄청난 포부에는 다소의 작위감과 어색함이 없지 않으나 현대는 현대의 문명을 요구한다는 믿음은 또다른 가치가 있다 하겠다. 사실 필자가 돌아본 엑스포 행사장은 이믿음에 상당부분 자극을 주게 하였다. 대륙과 바다를 건너온 폴란드나 브라질의 민속공연단들,다소 자질구레한 듯 보이는 민속품들을 판매하는 코 크고 눈 동그란 이국인들의 땀방울과지칠줄 모르는 미소가 이들의 공통된 욕망을 읽게 하였다. 게다가 힘든 노작을 결집시킨 공예, 판화, 조각작품들, 그리고 주제관(主題館)에 펼쳐놓은 멀티미디어 예술은 현대의 위기와인간의 고뇌, 미래를 향한 창조적 에너지들이 혹은 격하게 혹은 둘러대듯 하면서 관람자들을 상기(上氣)시켰다. 물론 음향기기와 모니터가 동원된 이른바 멀티아트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함이 크고 '새로운 천년'이라는 주제에 떠밀려 어느정도 강요된 감상이 된게 사실이지만전체적으로는 야릇한 공감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감상은 힘드나 공감은 간다'는 이 아이러니컬함은 어디서 올까. 현대의 새로운 문명은 갈등과 대응으로 점철된, 충돌과 반목으로 얼룩진 오늘의 살이(生)를 하나로 묶어주었으면 하는 현대인의 절박한 심증 때문이 아닐까.이말은 경주 엑스포의 의도(주제)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의도를 아끼는 것은 우리의꿈이고 애정이지만 그 외의 아쉬운 부분은 2년뒤에 또다시 열릴 경주 엑스포의 엄혹한 숙제이기도 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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