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일기-이젠 자식들이 지켜드릴게요

입력 1998-09-07 14:33:00

허튼데 눈길 한번 주지않고 오로지 근면성실로 앞만 보고 살아오신 아버지. 머리에 희끗한잔설을 이고 어느덧 60대로 접어드셨다. 가난한 집의 맏아들로 태어나 15세부터 살림을 책임지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배울 수도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건설현장의 막노동뿐. 그 길로 생활을 꾸리신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어렸을 적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이면 우리 4남매는 철없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이런날이면 아버지가 일을 나가시지 못하기 때문에 그나마 온가족이 함께 집안에서 오손도손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빠듯한 형편을 뻔히알면서 일을 나가시지 못하게 되자 속으로 한숨만 내쉬셨으리라.

요즘 들어 아버지는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다 그렇듯이 먹을 것 안먹고 입을것 안입고 한푼 두푼 모아오며 평생 자식만을 위해 갖은 고생 다 하셨는데.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아온 덕분에 집 한칸 장만하고 자식들 공부도 다 시켰는데.

세상은 갈수록 살기에 험난해지기만 한다. 물가는 폭등하고 민심은 흉흉해지고 있다. 연일신문과 방송에서는 은행이 망했다느니 대기업 부도로 실업자가 속출하고 있다느니 삶을 비관한 온가족이 동반 자살했다느니 우울하고 불길한 말들만 나오고 있다.

뼈가 으스러져라 열심히 일만 해오신 아버지. 조금 생활의 여유를 가질만도 하건만 사회가불안해지니 무섭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억울한 생각마저 드시는 것 같다. 63세의 건강치 않은몸에도 여전히 쉬지않고 일거리만 있으면 찾아나서신다. 하지만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그나마 있던 일거리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건설업이 한창 호황을 누릴 땐 일요일도 없이 일하셨고 올초만해도 1주일에 3~4일은 일을 하셨는데 최근 석달간은 단 하루도 일을 나가지 못하셨단다. 일 밖에 모르던 분이 석달을 매일같이 집안에서 지내자니 갑갑하고 불안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나보다. 괜시리 가족들에게 역정을 내시기도 하고 가끔씩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신다. 지켜보는 가족들은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씀드리지만 가장인 아버지에게는 별다른 위안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40년이 넘게 건설현장으로만 뛰어다녀 퇴직금이나 연금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 힘이 남아있을 때 하루라도 더 일을 해야지 하시지만 이내 체념의 한숨으로 고개를 숙이신다. 누구를탓하고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스물아홉 나이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된 도리조차 못하는 것이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그나마 가끔씩 찾아가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앞으로 효도할게요'하는 입바른 한마디뿐. 아버지!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우리 4남매가 있잖아요. 힘내시고 이제는 마음 편히 가지세요. 우리가 지켜드릴게요.

〈대구시 달서구 본리동 김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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