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순이 주부'로 거듭나기

입력 1998-08-26 14:00:00

IMF에 수재까지....

적자선을 넘나들며 겨우 생활하는 주부들이 자녀 개학과 함께 내야할 등록금이 태산같은데다 식탁꾸리기의 기본인 채소류값까지 폭등, 살림살기가 한결 힘들어졌다.

실직이나 구조조정의 여파로 '빼앗긴 봉투'나 '줄어든 월급'을 탓할 입장이 못되는 주부들은 이미 한두개씩 적금.보험통장을 헐어서 모자라는 생활비를 보충하는 입장인데다 수재로뛰어오른 채소류값에 들먹이는 쌀값까지 '적자 가계부'를 걱정하며 대안짜기에 골몰하고 있다.

40대 주부 김재님씨(42.대구시 동구 율하동)는 지난 21일 반야월 5일장에서 무값이 두배로오른 것을 확인했다. 가스업을 하느라 딸린 식객이 많은 김씨는 채소류값, 쌀값이 오르면 당장 가계 지출이 두배 이상 늘어나 올 가을 '생활기상도'는 잔뜩 흐려질 것으로 우려했다.7년차 주부 남인숙씨(33.대구시 북구)는 전국을 울리던 폭우가 갠 어느날 오후 동네 시장에김치거리를 사러갔다가 깜짝 놀라 포기하고 말았다. 포기배추 한통 3천원, 미나리 한단 6천원, 상추 한단 3천원, 부추 한단 3천원.

"유난히 김치를 좋아하는 다빈(7)이와 호승(4)이를 위해선 지금쯤 배추김치를 담아야 맛이든 김치를 줄텐데..."

남씨는 다락같이 오른 배추와 열무 대신 비교적 값이 오르지 않은 오이.깻잎.버섯을 산뒤 작년 이맘때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앞으로 얼마나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지 생각에 잠긴다.97년 8월18일. 숙박비를 제외한 1박2일 여행 총경비 11만3천5백원. 그때는 아침 점심 저녁세끼를 외식으로 해결하며 다소 편하게 보냈다.

올해는 돈들이며 멀리 놀러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빡빡하게 살고 있는데 뒤늦은 폭우로오른 채소값에 들먹이는 쌀값이 가계부를 위협하고 있다. 이미 IMF가 오고난뒤 가계에 빼야할 거품은 거의 다 걷어내지 않았던가.

주부들이 다 그렇듯 우선 내밑에 드는 돈부터 줄였다. IMF 이후 남씨는 자기옷과 신발류는하나도 사지않았고, 옷이 작아진 자녀들의 옷이랑 남편의 출근용 캐주얼 한벌만 구입했다.적자를 내지않기 위해 저축액(종전 50만원)도 40%나 줄였는데 수재로 채소류값이 올라 30만원이 한도인 생활비를 위협하고 있다.

혼자 애쓰는 남편(이원영씨.동원금속 영업부)을 돕기위해 하루에 안경다리 1천개를 조으고 5천원(한달에 10만원선)을 버는 남씨만 유난한 것이 아니다.

며칠전 20㎏들이 쌀 한포대를 2천원이 오른 4만3천원에 산 주부 박경숙씨(대구시 남구 봉덕동)는 벌써부터 뛰는 쌀값, 채소값의 고삐를 정부가 잡아주기만 기대하고 있다."그렇다고 채소를 안먹을 수도, 밥을 안지을 수도 없는 형편이니까 될 수 있으면 생물 구입을 줄이고, 통조림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습니다. 거기에다가 시골에 친척집이 있는 이웃주부들과 의논, 유통망을 거치지 않은 채소를 시골에서 공동 구매, 같이 나눠먹으며 생활비를 쪼개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뻔한 살림살이에 식생활비 부담이 너무 커지자 박씨는 그동안 외면했던 저장식품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올 가을에는 무말랭이, 무장아찌 등 집에서 만들어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저장식품을 단단히 준비할 예정입니다"는 박씨는 "주부들의 살림살이도 이제는 전쟁이나 마찬가지"라며알뜰살림을 위해 토란을 단채로 사서 찢어 말렸다. 얼마전에는 고구마줄기도 삶아 말린 박씨는 쓸데없는 가계지출을 막기위해 별로 쓰지않는 PC통신(한달기본요금 1만6백원)을 해약했다.

계명대 유가효교수(가정관리학)는 "IMF에다 수재까지 겹쳐 나라살림이나 가정살림이 똑같이 어렵지만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이겨나가는 자세와 아이디어나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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