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은 남편이 7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로부터 마지막 월급을 받는 날이었다. 남편은월급 봉투를 건네주며 "최선을 다했는데 정말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누구보다 직장에 충실했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남편이었지만 IMF의 거센파도를 비켜갈 수 없었다. 남편은 건축회사 감리단에 근무하고 있었다. 지역 건축경기의 불황 속에 현장의 공사가 중단돼 지난 5월부터 기약없이 집에서 쉬고 있었다. 건축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회사는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극약처방을 내렸다. 공사현장이 없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감원조치가 단행된 것이다.
지난달 30일 감원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던 날 남편은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거라 예상했던지 오히려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당혹감 속에 안절부절 못하던 나를 오히려 안심시키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은 나보다 더 무거웠던 것 같다. 결혼 5년만에 맞은 우리 가정의 최대위기. 얼마전에 입주한 아파트 융자금도 갚아야 하고 네살바기 아들과 다음달 태어날 우리둘째 애기.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열린 문 틈으로 남편의 절망적인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걸어 취직을 부탁해 보지만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남편은 깊은한숨을 내쉬었고 그 소리에 내 마음도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포기하지 않았다. 누가 그랬던가 '위기는 최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매일같이 독서실에 나가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고 불안한 마음 속에 몸도 자꾸 아프지만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요즘은 평소에 하지 못했던 개정 건축법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오히려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가끔씩 남편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논하곤 한다. 당장은 저축한 돈으로 살고 있지만연말이면 매달 10만원씩 나가는 아파트 융자금 상환도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행여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할까 조심한다. 아직 주저앉기에는 남편의 능력과 나이가 아까울 따름이다. 하루 빨리 내 남편에게 일할 기회가 오기를두손 모아 간절히 기도해 본다.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에서 주부 문은주〉
문은주씨의 남편은 올해 33세로 지난 89년 대구공업전문대를 졸업한 뒤 대구지역 건축회사감리단에서 7년간 근무했습니다. 건축설비기사, 산업안전기사, 소방기사, 냉동공조기사, 열관리기능사, 건축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채용을 원하는 업체는 (053) 588-2534로 연락주십시오.
실직자 여러분의 사연을 받습니다. 실직후 겪는 힘겨운 하루하루,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재기를 위한 노력 등을 편지지 1, 2매 정도로 보내주십시오. 실직자 본인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이웃들이 곁에서 지켜본 소감도 좋습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사 경제부 053)251-1735~8, FAX 053)255-8902.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남아공 대통령·호주 총리와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