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끈 치밀어 오르던 산맥의 용틀임도 마침내 긴장된 힘을 풀어놓는다. 머잖아 반도의 끝, 짙푸른 남해바다가 막아선다. 한반도의 가슴살로 온갖 바람을 직접 막아온 소백산맥은 한마디로 웅대한 산국(山國)이었다.
태백에서 갈라져 숱한 사람들과 그들의 사연을 속에 품은채 3백50여Km를 이어온 산맥. 돌아보면 산맥은 인간의 지친 어깨를 떠밀어 내려가라고 소리치는 자연의 목소리, 그 근원이었다. 우(宇)와 주(宙)의 경계 어디쯤 서 있는듯 산맥은 태초의 적묵으로 한반도의 중심에굳게 버티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살을 에는듯한 칼바람을 맞으며 산맥을 따라 초행길에 나선 취재진은 곳곳에서산과 더불어 한시대를 메워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태백에서 영월-봉화-영주-단양-소백산-문경-월악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을 이어내려오며 9개월여 이 땅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것은 척박한 환경에도 별다른 불평없이 묵묵히 삶을 지탱해가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되지 않는 논밭뙈기에 의지해 고향을 지켜온 질박하고 풋풋한 삶, 그들은 이 땅 우리의 얼굴이었다.산비탈에 기댄채 땅을 일구며 고향을 지키는 이들의 주름진 얼굴과 한평생 우리 것을 고집하며 신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허리굽혀 일하는 수많은 장인들의 굳은 손마디…. 넉넉한 그들의 혼은 소백산맥의 꿋꿋하고도 질긴 생명력과도 닮아 있었다. 또 역사의 진실과 흔적을 찾아 산을 헤매는 사람들의 집념도 남아있었고 경상도·충청도 주민들이 어울려 산신제도 지내며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우리 이웃의 모습도 비쳤다. 과거 돌팔매와 패싸움을 벌였던옛 앙금을 훌훌 털고 산맥의 자양분으로 양파며 감자를 출하할땐 품앗이로 서로 일손을 더는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의 화합의 다짐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문명의 이기가 할퀴고 간 상흔이 곳곳에 선연히 남아있었다. 웅혼한 소백의 줄기에 인간문명이 초래한 파괴의 상흔들. 댐으로 동강난 절경과 마구 파헤쳐진산, 골프장과 휴양단지조성으로 파괴된 숲…. 소백산맥과 더불어 살아온 소박한 사람들은자연의 무너짐에 못내 안타까워하면서도 거대한 자본과 문명, 개발의 힘에 저항해보지만 그저 움츠리고 몸을 낮출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도 산맥은 말이 없었다.우리 땅을 직접 밟고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세상풍진에 찢기고 바스라진 사람들의 몸과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산과 거기에 기대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늘상 삶의 더께를 탓하는 도회적인 마음을 풀어 헤쳐주는 산은 곳곳에 생채기가 나고패이고 갈라지고 깎여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 어머니같은 포근함을 잃지 않았다. 위용을 드러낸 산맥과 그 긴 그림자속에 묻혀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동해의 푸르름만큼이나 건강했다. 땅과 호흡하는 사람들, 그 땅을 자기몸처럼 아끼는 모습은 감동이었다.겨울에서 봄으로, 염천의 여름을 통과하는 계절의 변화속에 산맥은 스스로 제 모습을 바꾸는동안 우리들은 자연의 매서움과 관대함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산 정상에 서서 뼈속까지 저려오는 찬바람을 맞기도 했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매며 목적지를 찾아나서기도했다. 때로 언땅을 밟으며 산골로 산골로 길을 재촉했고 장마무렵 계곡을 휩쓸고 내려오는물마루에 아찔해하기도 했다.
또 이른 새벽 동트는 장면을 포착하기위해 산을 올랐다 카메라셔터가 얼어붙는 바람에 허탕친 일, 변화무쌍한 날씨에 제대로 손도 쓰지못하고 허탈한 심정으로 산을 내려온 일등 말못할 많은 사연들이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여름날 온몸을 적시는 땀속에서도 산맥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과 한모금 맑은 계곡물은 급한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었고 저물녘 산골마을의 밥하는 냄새에 왈칵 치밀어오르는 뜻모를 그리움에 삶을 다시 생각해보기도했다.
우리 마음속에 겹겹이 싸인 산줄기와 뿌연 운해에 가려 소백의 잔잔한 향내와 땅을 향한 고함을 미처 듣지 못했지만 소백산맥은 여전히 온갖 절망과 서러움, 분노를 삭여내고 자연의깊은 맛을 인간사에 전해주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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