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멸치와 고추장의 그리움

입력 1998-08-07 14:15:00

한줄기 쏟아 붓고간 빗줄기 뒤. 깨끗해진 하늘 저쪽 산봉우리에 석양이 걸리고 간혹 시원한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이면 집 근처 놀이터는 크고 작은 동네 아이들이 모여 뛰노는 소리로 활기차다.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요즘.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어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의 삶이 아닐까?

풍요속에서 지나친 영양과 학습과잉, 내가 최고라는 엘리트 의식속에서 자라고 있는 요즘아이들. 이제 이 어려움을 계기로 아이들에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가르칠 수 있는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옛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30,40대면 힘든 시기를 맛보았던 때다. 도시락 밥이 김치국물로벌겋게 번지고, 맛 있는 소시지라도 사오면 빼앗길까봐 도시락을 바토끼고 먹던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상한 것은 먹을 것이 없었던 시기인데도 못먹어 애를 먹었던 기억은별로 없다는 점이다. 있다면 자장면 정도. 학교 갔다와도 별로 반겨주지 않았는데도 늘 반긴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정신적으로는 넉넉했던 때였던 것 같다.

지금 풍요와 빈곤의 부조화 속에 살고 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도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을 맛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의 풍요가 결코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칠수만 있다면, 힘든 것을 같이 겪고 이겨내는 것이 가족애라는 것을 가르쳐 줄 수만 있다면. IMF라는 '괴물'도 일견 의의가 있지 않을까.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게 해내셨듯이.

도시락에 멸치와 고추장만 달랑 사주셨지만 오히려 늘 넉넉했던 그때가 그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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