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수립후 올해로 반세기를 맞는 우리 경제는 일제식민통치와 6·25의 폐허를 딛고 초고속성장을 구가해 왔으나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복병을 만나 주저앉고 말았다.
전쟁이 남긴 잿더미 위에서 정부-기업-가계가 한덩어리로 뭉친 이른바 '한국주식회사'는 20세기 근세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속성장의 신화를 일구어냈으나 선진국 클럽인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1년만에 그만 좌초 위기에 몰려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IMF사태를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양약'으로 보고 난국을 기회로 활용해 우리의 경제체질을 변화와 역동의 21세기형에 맞도록 바꾼다면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50년에는선진국으로서의 위치를 견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1인당 국민소득 67달러(53년)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우리나라는 전재(戰災)복구와의·식·주 해결이 지상과제였던 암울했던 50년대를 거쳐 6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에 착수했다.
고 박정희대통령이 이끄는 군사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발표(61년 7월)한 것을시작으로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이 시작됐고 외국차관을 들여와 전력·석탄·비료·시멘트·정유·제강 등의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영등포에 수출산업공단을 조성하는 등 수출진흥에 정책의 역점을 두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돼(70년 7월) 전국이 하루생활권으로 좁혀진 가운데 71년부터 시작된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는'자립경제''산업구조의 고도화''중화학공업 육성'등으로 경제개발의 가닥이 잡혔다. 73년과 79년 두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위기에 몰리기도 했던70년대는 건설업체들의 중동특수로 우리경제가 한단계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는 듯 했다.1~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주로 질 보다는 양적 성장에 초점이 맞춰졌고 그결과 80년대부터는 서서히 양적 성장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중화학공업 중복투자를 해소하기 위해 중화학공업 투자조정 시책이 발표됐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이 제정됐으며 대기업에밀려나는 중소기업을 '활력있는 다수'로 육성하기 위한 '중소기업장기계획'도 제시됐다.90년대 들어 개방화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자 국내 경제는 그동안의 취약성을 드러내면서본격적인 시련기로 접어들게 된다. 고정환율제를 대체하는 시장평균환율제의 도입, 유통시장개방, 금리자유화, 주식시장 개방, 외환집중제 완화 등의 조치에 이어 금융실명제의 전격 실시(93년 8월)로 우리경제는 다시 한번 엄청난 충격에 휘말렸다. 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의 공식 출범으로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를 맞게된 데 이어 96년 12월 OECD에 29번째로 가입함으로써 선진국 수준의 개방을 강요받게 됐다.
지난 61년부터 96년까지 연 평균 8.2%의 고속성장을 구가했던 우리경제가 경제난국을 맞게된 것은 냉전구도와 개발도상국 수준이었을 때 적합했던 '박정희식 경제모델'이 국내외 여건이 크게 바뀐 80년대 후반 이후에도 계속 유지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세계경제가 단일시장으로 급속히 통합돼 경쟁이 가속화되는 등 새로운 글로벌경제 환경이조성되고 있는데도 국내 정치관행, 기업·은행 경영행태, 사회구조는 구습을 탈피하지 못한채 안주해 있다 무너졌다는 게 한국개발원(KDI)의 진단이다.
우리경제가 IMF 관리아래 들어간지 8월로 9개월째가 된다.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새 정부는 고속성장경제가 잉태한 숱한 구조적 모순을 혁파하기 위한 대개혁드라이브를 강도높게추진하고 있다. IMF 사태이후의 최우선 정책과제였던 외환고갈조기확충이란 급한 불을 끄면서 환율과 금리는 일단 안정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금융과 기업에 대한 구조개혁 작업이한창이다.
이 과정에서 재벌이 무너지고 은행이 문을 닫는 등 과거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멀쩡하던 기업이 언제 어떻게 망할 지 모르는 불안이 지속되면서 신용공황 사태가 초래되고 금융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공장가동률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떨어지고 실업자가 1백50만명을 넘어섰다. 가정을 버리고 길거리로 나앉은 사람이 얼마나많으면 노숙자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앓을 정도다.
문제는 지금이 개혁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5대 재벌간 빅딜(대규모사업교환)을 실현시켜 중복, 과잉투자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통해 국가경제의 효율을 높여야 하고 기업과금융기관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불가피한 대규모 정리해고도 우리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고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경제구조의 개혁과 함께 정부를 비롯한 각 경제주체들의 의식개혁이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다. 60년대이후의 개발경제 때부터 체질화된 관치경제의 틀을 과감히 탈피하지 못하거나 정·경·관의 얽히고 설킨 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경제구조의 개혁은 국민 전체에 고통만 안겨줄 뿐 원상으로 복원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에는 효과를 발휘했지만 이제는 효율이 떨어지는 관료주의는 어렵지만 꼭 개혁해야할 대상이다. 관료들의 현상유지 행태는 반생산적일 뿐아니라 정부가 노동시장에 요구하는 유연성과도 정면 배치된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했던돈 부시 미MIT대 교수의 이같은 조언을 깊이 음미해 볼 때다.
한 민간경제연구소는 최근'한국경제 50년의 역정과 과제'란 보고서를 내고 "한국경제의 조기 회생과 재도약을 위해서는 경제현안의 해결을 넘어 21세기의 세계경제추세에 걸맞은 시스템의 구축과 정치, 사회문화, 개인의 가치관 등 전 분야에 걸친 개혁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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