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희망의 정치 보고 싶다

입력 1998-07-30 14:27:00

정가에서 요즘 제기되고 있는 토니 블레어론(論)에 대해 처음엔 '웬 토니 블레어…'라며 냉소한 바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전당대회(8월말)를 앞두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논점이 가만히 있는 영국총리 토니 블레어를 끌어 들인 것이다. 당을 개혁, 차기 집권태세를갖추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을 하고 그 중심에 설 인물을 뽑으면 될터인데, 하필이면 토니 블레어를 들먹이니까 냉소적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토니 블레어는 40대 중반이다. 18년동안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보수당에 정권을 빼앗겨 왔는데, 젊은 그가 노동당 당수로 등장하면서 당을 혁신하고 새로 정권을 잡게 된 '신비한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런 지도자가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사상과 국가경영철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함부로 그의 이름을 끌어다 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성장배경과 이념은 알려진 바대로 사회주의자 또는 사회민주주의자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열매를 따는 자본주의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공동체의식을 중심개념으로 삼는 사회주의자인데, 그런 그를 흠모해서 너도나도 토니 블레어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은 대선패배이후 와해국면까지 온 당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집권태세를 갖추기위해서는 젊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토니 블레어를 도입한 것 같다. 세대교체를 하자는 뜻으로 보편화 시켜버렸다. 토니 블레어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나라에 희망을 주는 새로운 지도자로 부각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김덕룡 서청원 제정구 이부영 강재섭 강삼재의원등이다. 한나라당 밖에는 이인제 손학규씨등이 거명되고 있다.29년전에 나온 '40대 기수론'과 흡사하다. 1969년 당시 김영삼 신민당원내총무가 40대기수론을 부르짖고 나올때가 42세, 잇따라 김대중 이철승의원등이 40대기수 대열에 합류할 때의나이도 44.47세였다. 40대들만 모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토니 블레어론에 관련된 정치인들의 나이는 강삼재의원(46)빼고는 강재섭의원(50세)을 비롯 모두 50대 전후반이다. 그래서40대 기수론을 재탕하지 못하고 신선미의 대명사격이 된 영국총리를 끌어다 쓰고있는 셈이다.

40대기수론이 나올 당시는 일부 중진의원들의 지원이 뒤따랐으나 지금의 세대교체론엔 중진들의 수용이 거의 없다. 같은 세대의 정치인들 중에는 '자기가 뭐라고…'하는 핀잔을 주는이들도 있다. 당내 분위기가 차가운 편이다. 또 당시의 야당에는 신.구파가 갈라져 갈등의폭이 컸는데, 이번의 야당사정은 지역구도로 짜여져 있는 것이 다른 일면이라할 수있다. 신.구파 싸움질도 지겨웠지만 이번에 다시 지역구도가 총재선출의 주변수(主變數)가 되고 있는것도 정치장래를 암담하게 한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김대중대통령을 돕고, 성원을 보내야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만, 3김시대의 끈질긴 연명엔 자다가 생각해도 우리팔자가 왜 이모양인가 싶을때가 많다.

그러나 난데없는 토니 블레어론이 불거져 나온 김에 한가닥 기대도 해보는 것이다.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투표권행사에 지구당위원장 지시복종이나 지구당위원장들의 세력가에 줄서기가 없어지고, 진정으로 국가운영의 비전과 통찰력을 가진 지도자를 뽑게 된다면, 국민의 입장에서도 행운이다. 인물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새 지도자를 떠받쳐주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새 지도자 부상(浮上)이 어려울 것도 없다.

여권(與圈)에서는 야당의 세대교체론을 개운찮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야당이 어떤 형태로든 지도부를 개혁하면, 여당도 앉아서 보고만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힘겹고 뜨거운 여름,희망의 정치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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