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100만원 밑져도 안 팔려

입력 1998-07-20 00:00:00

20년간 한우를 사육 중인 안동 김학률씨(44.풍천면 어담리). 그의 요즘 일과는 낫을 들고 산과 계곡으로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료값을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칡넝쿨과 풀을 베러가는 것. "종일 산을 헤메다 보면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이 힘들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 40마리를 굶겨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김씨의 고민은 이렇게 힘들여 소를 사육해도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종전의 소파동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정상을 되찾곤 했으나, 이번엔 IMF사태 이후 벌써 7개월이나 지났지만 회복 기미는 커녕 갈수록 더 깊이 침몰만 계속할 뿐이다.

"2백50만원 이상 생산비가 먹힌 출하기 큰소를 1백만원씩 밑져가며 거저 주다시피 내 놓아도 상인들이 사기를 기피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인지 한달 전 중간상인이 마을 소 20마리를 1주일 뒤 사가기로 하고 계약금 2백만원까지 주고 가고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했다.

안동 한우발전 동우회 조주동 부회장(45)은 "올 연말 쯤이면 야반도주 하는 축산 농가가속출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육 규모가 30마리 정도 돼 '전문 축산 경영인'이란 말을듣는 농가치고 수천만원씩 정책자금 빌려 쓰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대부분이 워낙 큰 타격을 입어 빚을 갚아나갈 여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 "오죽 했으면 일부 마을에서 키우던소를 도심 한가운데 내다 버리기까지 했겠습니까?"

안동 이모씨(43.와룡면)는 근본적 문제를 환기시켰다. "도체 등급제, 송아지 가격 안정화,도축장 현대화, 조사료 생산기반 조성, 소비자 가격 연동제… 그 숱한 한우 국제 경쟁력 높이기 정책사업의 효과는 다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단 한번의 사료값 파동과 소비 둔화에 맥없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 우리 축산 기반입니다" 축산 정책이 헛구호로 끝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특단의 지원책이 없는 한 우루과이 라운드 후 우려해 왔던 '축산농 완전붕괴'에 드디어 도달할 것입니다"

안동 지역엔 한우 30마리 이상 사육 농가가 2백호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이미 20~30%가 축사를 비웠다.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에 젖은 김씨 축사와 이웃한 빈 축사는 서글픈 우리축산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었다. 〈안동.鄭敬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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