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심금울린 애상조 선율-트로트(Trot)

입력 1998-07-10 14:29:00

대중음악에 대한 국민정서의 주류는 단연 트로트(Trot)다. 발라드, 록, 리듬 앤 블루스, 힙합등이 판치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90년대 등장한 노래방이나 KBS TV '전국노래자랑'의 애창곡 반이상이 트로트고, 트로트록을 위시해 트로트 요소를 가미한 새 장르들이 위세를 떨치는 우리가요의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4/4박자나 2/4박자의 '쿵짝, 쿵짝'하는 리듬때문에 일명 '뽕짝'으로도 불리는 트로트. 트로트의 원류에는 2가지 설이 있다. 191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춤 '폭스트로트'가 20년대 들어왔다는 설과 일본 신파연극의 모체인 '엔카'(戀歌)가 일제때 유입됐다는 설이 그것. 대체로 미국 '폭스트로트'가 유입된 뒤 30년을 전후해 엔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는게 중론이며, 2박과 4박, 단조5음계가 결합한 애상조의 선율이 특징.

트로트는 일제때 '타향살이' '황성옛터' '눈물젖은 두만강' '나그네 설움' 등 나라뺏긴 설움을 노래했고, 해방후엔 '귀국선' '고향만리' '신라의 달밤' 등이 널리 불려졌다. 또 50년대에는 '전선야곡' '전우야 잘있거라' '굳세어라 금순아' 등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노래하는 등민족의 애환과 '한'(恨)을 풀어주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

민족 수난기를 거쳐 60년대에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함께 황금기를 맞고 가요사에 확고한 뿌리를 내렸다.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 자니리의 '뜨거운 안녕', 김상희의 '대머리 총각'이 붐을 일으켰고, '빨간구두 아가씨'의 남일해, '산넘어 남촌에는'의 박재란, '삭발의 모정'의 은방울 자매가 60년대 초반을 주도했다. 이어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은 눈물의 씨앗'의 남진, 나훈아를 비롯 김세레나, 김부자, 문주란이 이 시대를 풍미했다.

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인 포크에 밀려 상당기간 뒷전에 밀렸던 트로트는 76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함께 돌아왔다. 최헌의 '오동잎',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최병걸의 '진정 난 몰랐었네' 등 트로트와 록이 뒤섞인 새 형태의 곡으로 젊은층을 유인했다. 90년대 불어닥친 '트로트록' 열풍의 단초로 볼 수 있다. 또 패티김, 문정선, 정미조에 이어 '내곁에 있어주'의 이수미, '당신의 마음'의 방주연이 색다른 분위기의 '세미트로트'로 트로트를 한단계 끌어올렸다.

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극도로 이반된 민심을 돌리기 위해 '국풍80'행사를 마련했다. 그 일환으로 열린 '국풍가요제'에서 이용의 '바람이려오'가 대상을 차지했고, 트로트의견인차 역할을 한 '전국 노래자랑'도 같은해 전파를 탔다. 포크나 록이 주류를 이루던때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와 '미워 미워 미워'는 다시 트로트를 미워할 수 없는 주류로 재등장시켰다. 주현미, 김연자, 문희옥은 트로트메들리 선풍을 일으켰다. 85년 곽순옥의 '누가 이사람을 모르시나요'와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에 이어 현철, 김수희, 태진아가 '뉴트로트' 바람을 일으켰다.

90년대 댄스음악 열풍으로 쇠퇴의 운명을 맞은 트로트는 96년부터 기성세대를 위한 가요의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방송사의 '가요무대' '난영가요제' 등에 의해 '부활'이 시도됐다. 현철,송대관, 김지애, 김수희, 임주리, 편승엽, 한혜진 등이 고군분투했고, 특히 김종서의 '대답없는 너'를 필두로 김경호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등 '트로트록'이 90년대 거대한 조류를 타고 있다.

따라부르기 쉬운 친근한 멜로디와 우리 고유의 '한 과 얼'의 정서를 담은 트로트는 대중음악의 급변하는 새 흐름속에서도 그 끈끈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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