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잃어서는 안될 것들

입력 1998-07-06 00:00:00

IMF이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다. 반년이 지나간 지금도 계속 더 내 놔야하거나 포기하고 버릴 것을 강요받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내 놔야 할지 모른다. 거품속에 살아온 내 탓이요, 인과응보의 자업자득이라지만 잃어도 너무 많이 잃어가고 있다.

'구조조정, 퇴출'이 씌어진 IMF깃발 아래서는 그 어떤 집단의 정의나 저항도 개인의 사정(私情)이나 하소연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 돼간다.

지금 개혁을 이끌고 있는 국민정부는 어떻게 보면 'IMF깃발'을 들게 된 것이 행운인지도 모른다. 'IMF'이 한마디면 웬만큼 저항이 따를 수 있는 힘드는 정책도 과거보다는 손쉽게 밀어붙일 수 있는 깃발의 후광효과를 덕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국민정부가 잇따라 내놓고 있는 많은 개 혁정책중 시행착오적인 실책이나 준비 덜 된 오류가 있다해도 IMF깃발의 후광속에 허물과 허점 이 묻히고 있는것은 분명 IMF에 의해 '덤'으로 얻는 깃발의 이득일 수 있다. 최근 그러한 '덤의 반작용'은 군데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퇴출은행의 인수처리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서툴기 짝이 없는 국정운용 솜씨만해도 한마디로 대통령 한사람만 준비됐다고 할뿐, 하부조 직의 손발은 아직 준비가 엄청 덜 돼있음을 보여준 경우다. 금융결재가 몰리는 월말을 D데이로 잡고 반발이 있기 마련인 퇴출은행 명단을 사전 공개하고 인수의 핵심요건인 전산망 사전장악을 안한 것 등은 그저 깃발만 내세우면 뭣이든 무소불위, 꼼짝못하고 통할 거라는 '덤'의 기대와 안 이함에서 비롯된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은행 퇴출뿐 아니다. 교육부의 교사 퇴출문제만 해도 그랬다. 문제교사의 퇴출은 나름대로의 명분 이나 현장사정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다루는 교육개혁을 기업 구조조정식의 발상과 방식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은 정책판단의 오류가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장관이나 행정 관료가 몇십년씩 현장 교육 경험을 쌓아온 교사의 자질 유무를 단숨에 시험쳐서 가려내겠다는 발 상은 IMF깃발만 내걸면 누구나 굴복시키고 어떤 비상식도 상식으로 만들수 있다는 식의 위험한 사고다.

바로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IMF로 잃고 있는 것이 직장과 소득과 삶의 질 저하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나 정책입안자들의 사고속에 설득과 타협의 노력보다는 만사를 IMF개혁명분 하나로 졸속이든 무리든 밀어붙이기만 하면 그만 이라는 사고가 생겨나면 국정을 진지하고 겸허히 대하는 바람직한 통치철학의 전통하나를 잃는 셈이 된다는 말이다.

IMF이후 안 잃어도 될 것을 잃고 있는 것은 또 더 있다. 퇴출은행 일부 행원들과 부산 지하철 노조 등의 전산망 복구방해, 퇴직금 챙기기, 일터 불지르기 같은 비이성적 저항에서도 우리는 신 용사회의 안정과 지식계층의 긍지라는 소중한 것을 잃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관치금융과 부패정 치의 희생자인 억울함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사회의 엘리트인 금융인과 고급 기술인력들이 공인 (公人)의 책임과 직업인의 자긍심을 내 팽개친 것은 분명 이사회에서 신뢰와 지식계층의 긍지를 잃어 버리는것이 된다.

IMF는 집단이나 개인의 투쟁적 저항으로 이겨낼 대상이 아니다. 4천만 모두의 인내와 희생을 나 눠 가짐으로써 이겨낼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는 직 업인의 긍지를 쉽게 버리거나 자폭하고 저항하기 이전에 개인의 희생은 아프더라도 공익과 사회 조직의 신뢰는 지킨다는 희생정신은 끝까지 잃지 않아야 옳다고 본다. 나라가 조금 어수선하고 어렵다고 정부는 진지한 준비의 노력 대신 IMF깃발의 후광효과만 과용 하고 국민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해에 밀려 직업인의 자긍심까지 내던져 버리기 시작하면 결국 우 리는 달러보다도 더 소중한 다른 많은 것들을 다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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