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우울증 반영 극장가 공포분위기 고조

입력 1998-07-04 14:06:00

새로운 천년(밀레니엄)을 앞둔 세기말의 불안감때문일까. 전세계에 '공포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엘니뇨와 열대림 파괴, 해안 매립 등이 생물체의 다양성을 위협하고있는 요즘, 인류의 최후를 경고하는 각종 예언서들이 난무하고 과학자들은 또한번의 '대멸종'이 시작됐다며 경종을 울리고 있다.

시대의 정서를 앞서가는 영화의 세계도 암울하기만 하다. 올해 개봉됐거나 개봉을 앞두고있는 영화들은 온통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우울한 자화상들을 담아 '세기말 영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올해 잇따라 개봉돼 관심을 모으고 있는 '딥 임팩트(대충돌)'와 '아마겟돈(세계 종말의 대결전)'은 단지 허무맹랑한 영화속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거대한 혜성과 지구의 충돌을 소재로 삼아 지구 종말을 경고하고 있다.

지구의 모든 도시와 생명체를 삼켜버릴 거대한 혜성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핵폭탄으로 혜성을 폭파한다는 설정은 이미 NASA(미항공우주국)에서 추진중인 프로젝트의 하나. NASA제트추진연구소는 소행성 폭파작업의 일환으로 내년에 우주선을 혜성에 보내 2006년 귀환토록하는 '스타더스트'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핵폭탄의 산물로 태어난 도마뱀의 변종인 거대한 '고질라'는 최고의 문명을 구가하는 뉴욕시가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인간의 빗나간 과학문명의 이기를 경고한다. 테크놀러지가 빚은 암울한 미래상을 그리고 있는 '에이리언4'는 인간과 괴물을 복제하는 과학문명에 대한경계를 담고 있다.

이같은 과학에 대한 회의, 문명 비판, 천재지변, 미래 공포 등은 조만간 개봉될 영화에서도예외가 아니다.

지금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X파일' 극장판은 '미래를 위해 싸워라'라는 부제아래 현실로 닥칠지도 모르는 외계인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다.

세기말적 SF액션영화 '스폰'은 만화속 주인공을 영화로 끌어내 양심과 도덕이 실종된 시대에 사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비판한다. 복수를 위해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기는 스폰은정의를 수호하는 자유의 상징으로 부각돼온 기존의 영웅들과 달리 잔혹한 지옥의 사자가 되어 복수를 꿈꾸는 비관적이고 음울한 세기말의 영웅상을 제시한다.

공포영화붐을 타고 개봉될 '어딕션'은 인간의 피를 마시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뱀파이어가 '인간의 악이 관습화된 형상'이라고 전제, 인류 죄악에 대한 고발의 메시지를 담고있다. 뱀파이어가 된 인간이 악행을 종결짓기 위해서는 '자살'뿐이라는 비극적이고 충격적인결론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올여름 개봉될 한국형 블록버스터(흥행용 대작) '퇴마록'은 세기말의 혼돈속에서 악령과 맞서 싸우는 퇴마사들의 영웅담을 그린 영화로 암울한 분위기가 전편에 흐른다.

세기말이자 천년의 말,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미래는 과연 현실로 다가올 것인가. 지구 종말의 최후순간에도 인간은 끝까지 살아남아 찬란한 문명을 다시 꽃피울까. 새 천년을 맞는 인류의 가장 큰 궁금증을 제시하는 '세기말 영화'들은 앞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최고의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金英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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