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잠수정과 햇볕론

입력 1998-06-25 15:33:00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대북 햇볕론'이 시험대에 올랐다.

김대통령은 24일 취임이후 처음으로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바람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데 실패했지만 햇볕은 성공했다'는 이솝우화를 소개하면서 햇볕정책이 변함없다는 점을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이 북측과 금강산 관광사업에 합의한 것은 햇볕정책의 의미있는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6·25전쟁 발발 48주년을 맞은 25일, 한반도주변에는 이같은 남북간의 화해무드와냉전이 공존하는 이상한 기상도가 펼쳐져 있다. 우리 국민들이 금강산 관광의 꿈에 부풀어있는 와중에 동해에서는 북한의 잠수정이 우리 영해에 침범했다가 민간어선의 어망에 걸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김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당국자는 햇볕정책은 변함없다고 외칠 뿐 잠수정사건에 대해서는 '진상을 조사한 후 대응하자'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고 군당국의 잠수정 예인과정 등 대처방식도 온 국민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방·통일·외교통상장관과 안기부장·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참석한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에서는"과거 동독은 망하기 직전까지 서독에 간첩을 보냈다"며 이번 사건을 대수롭지않은 일로 치부하는 발언까지 있었다고 한다.

정부는 또 이번 잠수정 침투는 명백한 휴전협정 위반이자 무력도발이라고 규정해놓고도 대북 경고성명을 유보시켰다. 정부당국자가 "합참의 사고는 너무 군사적인 사고"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군사적 도발행위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그래서 정부가 햇볕정책 고수라는 대통령의 입장에 얽매여 기본적인 대응마저 하지않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마저 '매우 심각한 일'로 규정했는데도 우리 정부는 신중한 대응만 되풀이하고 있다.

햇볕정책과 북한의 명백한 휴전협정 위반행위에 대한 군사적·외교적 후속조치는 별개다.우리 정부의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가 없는 햇볕정책은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 북한은 지난 22일 판문점연락관 접촉도 거부했고 이에 따라 정부당국자가 8·15공동행사를 위한 실무접촉을 공개 제의하는 일도 빚어졌다.

6·25전쟁이후 48년이 지났는데도 냉전시대를 청산하지 못하고있는 남북관계가 햇볕론같은'이솝우화'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여론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徐明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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