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중국 닫힌 중국-위생 관념

입력 1998-06-17 14:11:00

신쟝(新疆)지방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차를 갈아타느라 깐쑤(甘肅)성의 성도 란쩌우(蘭州)에 내렸다가 여독도 풀겸 목욕탕을 찾았다.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간 역근처의 목욕탕은상호도 없이 그냥 위츠(浴池:목욕탕)라고만 돼있었다. 하긴 워낙 목욕탕이 드물어 상호도 필요없으리라.

일행 4명의 목욕비는 모두 합쳐 우리돈으로 4백50원정도라 싸기는 엄청 쌌다. 그런데 목욕탕의 문을 밀치고 들어선 순간의 황당함이란··.

10평도 채 안돼 보이는 좁은 공간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욕탕이 없다. 천정에 샤워기만 5개붙어있을뿐. 옷장도 없어 갖고 간 비닐봉투에 소지품을 쑤셔넣어 창턱에 얹어두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한쪽 구석에 온갖 종류의 쓰레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었다. 샤워기에선다행히 더운 물이 나오는데 영 감질나게 졸졸 흘러나왔다. 게다가 붙박이 샤워기라 해바라기처럼 뱅뱅 돌아야 했다.

씻는둥 마는둥 밖에 나오니 일행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남탕은 더 심했던 모양이다. 조그마한 욕탕이 하나 있긴 있는데 욕객들이 슬리퍼를 신은채 탕안에 들어오는 바람에 수채물처럼새카맣더라는것. 그나마 샤워기도 단 한대뿐이라 한바탕 쟁탈전을 벌였다고 했다. 우스운 것은 그런 와중에도 때밀이가 있더라나.

중국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위생관념이 부족하다. 목욕은 커녕 몇달쯤 세수를 안한 듯한 사람들도 적지않고 치석이 더께더께 쌓여 황금이빨(?)이 된 사람들도 적지않다. 아파트주민들은순간 온수기로 샤워정도는 하는것 같지만 절대다수인 핑팡(平房:일반주택)주민들은 아예 목욕이라는걸 모르고 산다.

중국에선 대중목욕탕이 매우 드물다. 인구 1천만이 넘는 베이징에서도 목욕탕은 겨우 열손가락에도 못미칠 정도. 그나마 한번 목욕탕에 가보면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바닥은 켜켜이쌓인 때로 구역질이 날 정도이고 슬리퍼를 신은채 욕탕안에 들어온다. 슬리퍼에 묻혀져온찌꺼기들이 물위에 둥둥 떠다닌다. 최근엔 몇몇 큰 호텔에 외국인용 사우나가 생겼지만 서민대중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목욕을 멀리 하다보니 중국인 몇명이 모인곳에서는 흔히 묘한 냄새가 난다. 특히 겨울철 버스안이나 서점 등 사람이 많은 공간에선 냄새때문에 머리가 핑 돌 지경이다. 땟국물이 줄줄흐르는 시퍼런 인민복외투에 봉두난발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루씬(魯迅)의 소설 아큐정전의 한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깐쑤(甘肅), 칭하이(靑海), 닝샤(寧夏) 등 중서부 빈곤지역에서 특히 심하다.

입식생활을 하는 중국인들은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생활한다. 제대로 청소를 안하기 때문에 집안 곳곳은 먼지가 뽀얗다. 그들의 위생관념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부엌.무엇보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행주인데 일반가정이건 식당이건 예외없이 행주가 거의 걸레수준이다. 너덜너덜한 시커먼 행주로 그릇을 썩 닦아 음식을 담아내므로 아예 안보고 먹는것이 상책이다.

생활전반에 걸친 중국인들의 위생둔감증에 대해 정부당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거리 곳곳엔 빨간 글씨로 '선진국민이 되려면 위생적인 생활을 해야한다'는 내용의 구호가 연중 계속되고 있지만 큰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중국인들은 자기들도 원래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었지만 오랜 세월 황토와 모래바람 등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오랫동안의 가난과 대륙을 휩쓴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이 자신들을 변질시켰다는것.

문혁당시 청결과 위생은 반프롤레타리아적,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땀과 먼지가 얼룩진 노동자의 모습은 충실한 사회주의자의 모습으로 인식됐다. 살얼음판 같은 문혁기간에 중국인들은 더러움을 오히려 편안하게 받아들였고 그러한 관념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대륙의 중국인들은 앞으로 중국이 부강해지면 지금의 불결한 모습은 급속히 사라지고 원래의 깨끗한 중화민족으로 탈바꿈하게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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